[연중기획] 2020 전자대국을 향하여 <1부> `미래의 유전` 2처전지를 키우자 (8) 전지산업 새 지도를 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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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도 그치지 않고, 뿌리깊은 나무는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다.”

 2차전지 시장이 가파른 성장 곡선을 그리고 있다. 전기자동차, 로봇, 전동용 공구, 대용량 전력저장장치(ESS) 등 쓰임새도 날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그간 2차전지 분야에서 급격한 성장곡선을 그려왔다. 하지만 그 내부 구조를 들여다보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2차전지의 핵심 원천 기술은 대부분 여전히 해외에 뿌리를 두고 있다.

 2차전지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수요와 매출이 늘고 있지만 오히려 핵심소재의 준비 미흡으로 그 이득은 외국 업체가 챙길 공산이 크다. 향후 자동차 시장과 대용량 2차전지 시장으로 넘어가기 위해선 안전성 검증도 따라야 한다. 국제적으로 전기차가 널리 확산되면 국제표준을 요구하는 일은 당연해지기 때문이다. 국내에는 2차전지의 안전성을 인증할 표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다.

 ◇고속 성장 2차전지 시장 잡아라=리튬 2차전지의 성장속도가 눈부시다. 일본 시장조사기관인 IIT 보고서에 따르면 리튬2차전지 시장은 지난해 기준 약 97억달러(11조원)에 불과했다. 삼성전자의 D램 매출과 비슷한 규모다. 하지만 이 시장은 2015년에는 167억원(20조원)으로 배가량 급성장할 것이란 전망이다. 성장의 주요 축은 휴대폰과 PMP 등 모바일기기와 전기차 등이다. 특히 자동차 등 수송용 2차전지 시장은 지난해 2억달러(2400억원)에서 2015년에는 40억달러(4조8000억원)로 20배가 넘게 커질 것이란 예측이다. 가솔린을 대체하는 녹색 전지시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이러한 예측은 10년 후인 2015년에 전기차가 일상 속에서 가솔린 차량을 10%가량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기반을 둔 수치다. 전기차 활성화 속도를 내면 관련 시장 역시 성장이 더 가팔라질 수 있다. 특히 전력효율화를 위해 스마트 그리드와 풍력, 태양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활성화되면 전력저장장치로서 2차전지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각국 간 2차전지 시장경쟁도 격화되고 있다.

 일본은 지난 1990년부터 이어온 기술력을 발판으로 전기차 시장을 선도하고 있고 중국도 우리를 거세게 추격하고 있다. 그야말로 시장을 둘러싼 아시아의 삼국전쟁이 본격화된 것이다.

 우리나라 역시 소형전지 분야의 강점을 중대형 전지로 이어가기 위한 정부와 업계가 공동으로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풀어야 할 숙제도 산적했다.

 ◇국산화율·수입 증가세= 가장 큰 난제는 소재·부품의 국산화율이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기업이 2차전지 제조 분야에서 강점이 있지만 핵심기술은 여전히 외국 의존도가 크다고 지적한다. 특히 중대형 분야의 국내 시장 자립률은 20∼30%에 불과하다는 평가다. 우리나라가 강세를 보이는 소형전지 분야 국산화율도 60%에 그치고 있다.

 이는 가격경쟁력의 약화로 직결된다. 일례로 SK에너지가 핵심소재 가운데 하나인 격리막 양산에 나서자 일본의 토넨은 기존 가격을 절반가량 낮췄다. SK에너지의 진출을 봉쇄하기 위한 조치였지만 2차전지 업계에 가격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한 것이다.

 2차전지 수입도 크게 늘고 있다. 지난 2004년 3억달러 불과했던 수입액은 2008년에는 5억달러로 40% 이상 증가했다. 특히 중국과 일본에서의 수입은 각각 36.4%와 19.2% 늘어났다. 생산량이 확대되기 때문에 핵심소재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데 따른 것이다.

 국산화율은 재료에 따라 소폭 차이가 있지만 20% 이하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소재 분야별로는 2차전지의 3대 핵심소재인 양극활물질의 국산화가 가장 시급하다.

 양극소재는 리튬2차전지 원재료 가격의 36%를 차지하는 가장 비중이 큰 소재. 그만큼 시장규모도 크다. 세계적으로 양극활물질 생산은 일본 닛치아, 토다공업 등 일본업체의 강세가 두드러진다. 국내에서는 벨기에계 회사인 한국유미코아와 엘엔에프신소재, 에코프로, 한화 등 다수 기업이 생산하고 있지만 아직 국내 수요에도 미치지 못한다. 생산품질 역시 중국에는 앞서지만 일본에는 뒤진다는 지적이다. 따라서 고부가재료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나아가 주요 핵심 특허는 미국의 3M과 캐나다 슈드캠이 확보하고 있어 특허료도 지급해야 한다.

 음극활물질은 거의 국내 제조가 안 되고 있다. 오히려 히타치화성, JFE, 일본 카본 등 일본 3사 점유율이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소디프신소재와 카보닉스가 일부 생산하지만 미미한 수준이다. 저가품에서는 천연소재인 흑연이 사용되고 고사양 제품에선 인조흑연이 사용되지만 가격경쟁력과 기술력에서 경쟁국에 모두 밀린다.

 전해질은 국내에서 욱성화학이 제조해 100% 수요를 충족시킨다. 하지만 원가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리튬인산철염(LiPF6염)과 카보네이트 물질의 생산 시설이 없어 단순한 조합에 그치고 있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제조기술뿐 아니라 원천기술에 대한 연구개발(R&D)도 병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류광선 울산대학교 화학과 교수는 “국내 기술력이 최근 10년간 빠르게 성장하면서 2차전지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췄지만 원천기술 분야는 뒤져 있다”며 “정부와 기업도 원천기술 확보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원천기술력을 보유하게 되면 기존 전지 외에도 보다 값싸고 힘이 센 새로운 제품을 개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시장이 확대되면 에너지 밀도가 높고 오래가는 신물질에 대한 다양한 요구가 쏟아질 것이 분명하다. 하이브리드차(HEV)의 특허에 대한 소유권은 대부분 일본과 미국이 독점. 우리나라는 차량기술뿐 아니라 부품기술 또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실정이다.

 ◇안전성 등 표준화 대책도 시급=안전성을 위한 정부와 업계의 노력도 절실하다. 성장이 기대되는 전기자동차 영역이 더욱 그러하다.

 삼성SDI, LG화학 등은 노트북, 휴대폰을 비롯한 휴대기기에 장착되는 리튬2차전지 표준화 위주로 미국의 인증시스템에 각각 대응해왔다. 하지만 향후 전기자동차 수요가 커지면서 안전성 요구가 거세질 만큼 안전성과 신뢰성을 입증할 표준이 마련돼야 한다. 친환경자동차는 부품 평가 규격의 표준화가 없고, 공인된 평가기관도 없는 상태다.

 충전시스템과 인터페이스 역시 회사별로 각각 평가기준을 만들고 표준화를 진행한다면 평가설비를 중복 투자하는 역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 주도하에 차량 및 부품 표준화 및 평가를 위한 평가기관을 설립, 평가설비 및 평가절차 표준화를 진행해야 한다.

 특히 전기차와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는 업계내 긴밀한 협조가 필요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2차전지는 국내업체의 경쟁력이 도약 가능성이 큰 기술이며 새로운 첨단기술 산업 창출과 신규고용 창출 확대에 기여할 가능성이 크다”며 “원천기술에 대해서도 자동차회사와 부품업체 간 긴밀한 교류를 바탕으로, 핵심기술과 주요부품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