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눈을 뜨면 가장 먼저 노트북PC의 전원을 켠다. 양치질을 하러 가거나 커피를 마시는 대신 침대에 누운 채로 e메일은 물론 최신 뉴스와 커뮤니티 사이트, 블로그를 체크한다.
필자의 일상이 아니다. 베를린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있는 23세의 여대생 요한나가 요즘 반복하고 있는 아침 풍경이다. 인터넷 세대에 속하는 요한나는 미디어가 존재하지 않는 삶을 상상하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녀에게 “하루 일과 중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되느냐”고 질문한 적이 있다. 그녀는 다소 난감한 표정과 함께 어깨를 으쓱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인터넷을 하며 보내는 시간이 많기는 한데, 정확히 얼마인지는 말하기가 어렵네요. 다른 일을 하더라도 노트북은 항상 켜져 있으니까요.”
집에서 TV를 볼 때나 학교 도서관에서 공부할 때는 물론 저녁 식사시간에도 요한나에게 인터넷은 언제나 스탠바이 모드이다.
최근 독일 국민의 3분의 2가량이 매일 또는 주중 여러 차례 인터넷에 접속해 웹 서핑을 즐기고 있다고 한다. 공영방송 ‘ARD/ZDF’가 매년 실시하고 있는 자국민의 온라인 이용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인터넷 이용시간은 지난 2003년 대비 12%포인트나 늘어났다. 인구통계학적인 차이는 있다. 예컨대 남성 이용자가 여성보다, 그리고 연령대가 낮을수록 인터넷 서핑 시간이 많다. 특히 어린이·청소년을 비롯한 20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TV보다 더 중요한 매체로 자리 잡았다.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미디어기구와 함부르크 대학 한스-브레도프 미디어연구소, 이웃 나라인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대학 신문방송학과 등이 공동 실시한 조사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결론만 보면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인터넷이 더 이상 정보 획득을 위한 매체가 아닌, 일상 생활의 필수적인 요소로 자리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 조사 연구는 지난해 12∼24세 젊은 층을 대상으로 인터넷 이용 및 인식 현황을 조사한 것인데, 인터넷이 막강한 ‘재미’의 요소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극히 개인적인 경험과 관심사, 그리고 의사 표현에 이르기까지도 이른바 ‘자기연출’의 도구가 된다는 점에서 젊은 세대들이 큰 매력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보여줬다.
“인터넷이 없었다면 유튜브도 이용하지 못했겠죠. 이것 없이도 살 수는 있지만, 그러고 싶지 않아요”.
이 조사 연구에 참여했던 한 14세 소녀는 그렇게 말했다. 설문 조사에 응했던 한 17세 소년도 “내게는 24시간 언제나 친구들과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발언들에는 최근 미디어 이용 행태의 중대한 흐름이 반영되어 있다. 예컨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거의 모든 연령대에서 구글과 같은 검색엔진 이용 비율은 큰 차이 없이 높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유튜브를 비롯한 중고등학생 커뮤니티사이트인 ‘슐러파우체트(SchuelerVZ)’나 여러 인스턴트 메신저 등 소셜 네트워크 사이트(SNS)에는 젊은이들의 관심사가 온통 집중돼 있다.
이런 미디어 이용 행태는 인간관계 관리라는 일종의 사회현상으로 볼 수 있는데, 크고 작은 모임이나 단체 위주의 관계에서 디지털 커뮤니티로 사회관계의 양상이 변동하는 추세를 보여준다.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 더욱 심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른바 디지털 네이티브라는 사회적 존재의 형성도 바로 이런 사회 커뮤니케이션의 변동 과정에서 설명돼야 한다.
한편 독일 청소년보호위원회의 청소년 멀티미디어 이용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젊은 세대가 있는 가구는 평균 3.8대의 휴대폰을 보유하고 있다. TV의 경우 2.5대에 이르고 컴퓨터(2.3), MP3(2.1), 디지털카메라(1.6), 인터넷 연결(1.6), 콘솔게임(1.1) 등도 평균 1대 이상씩의 보유 대수를 기록중이다. 이 보고서에서도 역시 커뮤니케이션(이메일, 메신저, 채팅, 커뮤니티)이 인터넷 이용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고 그 뒤를 이어 게임, 정보, 오락(음악, 동영상, 사진)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인터넷은 독일 사회에서 진행중인 디지털화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웹 3.0 개념이 대두하고 있는 현실에서 향후 10년 이내에 엄청난 속도의 디지털화가 사회 전면에 파급될 것으로 독일 미디어학자들은 내다보고 있다. 더구나 지난 20여 년간 미디어 시스템의 발달 속도를 감안하면 이런 진단에 더욱 힘이 실린다.
독일 사회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킨 중고등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인 ‘SchuelerVZ’ 대신, 법학도인 요한나는 대학생 커뮤니티 사이트인 ‘슈투디파우체트(StudiVZ)’를 이용한다. 요한나에게 SNS의 최대 장점은 닉네임으로 부담없이 개인적인 사항들을 멋지게 꾸미거나 쉽게 변형하여 공개할 수 있는 편리함이다.
한스-브레도프 연구소의 얀-힌리크 슈미트 박사는 다소 냉정하게도 이를 인터넷 노출증으로 진단하는데, 이것이 디지털 매체의 성공 요인 가운데 하나라고 분석한다. 개인적인 일상의 면모들이 점점 더 공개되는 현실이 도래했다는 것이다. 이는 반대로 사생활 침해 등과 같은 정보 윤리의 문제도 대두된다.
이런 맥락에서 미래 디지털 사회의 주역이 될 오늘날 독일의 젊은 세대들은 이미 디지털 세계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독일의 기성 세대가 디지털 미디어의 사회적 의미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이미 디지털 기술은 젊은이들 현실의 물적 기반을 바꾸어 놓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 경제의 상품 유통과 소비 방식을 바꾸어 놓고 있는 거대한 디지털 물결은 그에 걸맞은 새로운 디지털 윤리를 또한 형성해내고 있다.
독일 젊은 세대에게 ‘뉴미디어’라는 규정은 오히려 낯설다. 디지털 미디어와 더불어 성장한 독일인들에게 그것은 ‘뉴(new)’하지 않고 단지 ‘노말(normal)’이다. 그것이 지금 삶의 형태요, 가치이고 규범이다.
베를린(독일)=서명준 베를린자유대학교 언론학 박사 mjseo10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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