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칼럼] 다시 생각하는 호암의 인재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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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28년 전인 1982년 10월 11일, 프로야구 원년 한국시리즈 6차전이 열린 동대문운동장. 5차전까지 OB와 삼성의 전적은 3승 1무 1패로 OB가 앞선 상황이었다. 삼성 라이온즈 선발투수 이선희는 개막전 MBC 이종도 선수에게 만루 홈런을 맞은 데 이어 OB 김유동에게 또다시 9회 만루 홈런을 허용함으로써 원년 우승의 영광은 OB에 돌아갔다.

 한국시리즈 마지막 경기(결론적으로)에서 9회 만루 홈런 허용은 투수 이선희에게 악몽이었겠지만 삼성 라이온즈 구단에도 적잖은 충격이었다. 구단 관계자들은 이병철 회장의 불호령을 각오했다. 그런데 정작 이 회장은 “괜찮아, 잘했어”라며 그다지 불쾌감을 보이지 않았다. 이 회장은 국내 제일의 그룹이지만 “삼성에도 이렇게 약한 면이 있다는 것을 국민에게 보여주었다는 것만으로 괜찮은 것”이라며 통크게 웃으면서 아랫사람들을 다독거렸다. 당대 최고의 경영자다운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이와는 별도로 이건희 당시 구단주도 이선희 선수를 자택으로 불러 “충격이 크겠지만 괜찮다. 열심히 해서 내년에 잘하도록 하라”며 부산 범어사에서 참선으로 충격을 다스리라고 권했다.

 삼성의 경영 모토 중 하나가 ‘제일(1등)’이다. 당시 삼성 구단이 프로야구 원년의 쓰라린 패배를 문제 삼아 이선희 선수를 방출했다면 초기 프로야구 흥행에도 찬물을 끼얹었을 것이다. 일등을 지향하되 문제가 없는 사람은 계속 같이 간다는 호암의 경영철학이 묻어난다.

 내일(12일)은 세계 최대 전자기업인 삼성전자를 일군 호암 이병철 회장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날이다. 1938년 자본금 3만원으로 설립한 삼성상회는 지금 전 세계가 주목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지난 2008년 기준 삼성그룹은 해외법인을 포함한 매출이 206조원으로 처음으로 200조원을 돌파했다. 이 밖에 범삼성가인 CJ그룹은 매출 15조원, 신세계그룹도 매출 15조원, 한솔은 올 매출 8조원 규모의 기업이 됐다. 지난해 기준으로 대략 매출 300조원 기업이 호암에 뿌리를 둔 셈이다. 삼성은 수년째 대학생들이 가장 입사하고 싶은 기업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브랜드 가치만도 20조원에 달한다.

 이달 호암 탄생 100년을 맞아 다양한 행사가 열리고 있다. 4일 기념음악회, 5일 기념식, 9일 삼성효행상 시상식, 10일 ‘한국경제성장과 기업가 정신’ 관련 학술포럼 등 내용도 풍성하다. 호암의 경영 철학은 사업보국, 인재제일, 문예지향, 백년일가, 미래경영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 이 중 뭐니뭐니 해도 핵심은 인재제일이다. 호암은 기업은 사람이 만드는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인재경영은 삼성뿐만 아니라 다른 기업들에도 파급돼 오늘날 경제강국 대한민국의 기틀이 됐다. 호암은 한번 맡기면 끝까지 사람을 믿었다. 마치 중요한 경기에서 두 번이나 만루 홈런을 맞은 이선희 선수를 격려하듯이. 호암에 대한 평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그의 과오가 무엇이든 간에 당장의 성과에 집착해 인사를 밥먹듯 하는 기업들은 한 번 되새겨볼 일이다.

홍승모 전자담당sm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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