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 젊음을 잃어가는 일본의 공장

 일본의 공장이 늙어가고 있다.

 최악의 불경기 속에도 여전히 평생고용이 든든히 뿌리내리고 있고, 고령 기술자 우대 정신이 산업을 떠받치고 있다.

 하지만 가뜩이나 엔고로 인해 일본 제품은 대외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고 기업의 고정비용 상승에 따른 경쟁력 약화와 청년 일자리 창출 미진 등 사회적 역작용도 크다.

 무엇보다 세계 최고의 제조업 기반이 고령화로 역동성과 활력을 잃고 세계의 변화와 혁신 흐름 앞에 대응이 느려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가장 큰 걱정이다. 세계 최고의 고령국가 일본이 제조업과 공장 분야에서 빠른 속도로 늙어가고 있다.

 ◇“계단 오르내릴 수만 있어도 일 시킨다”=올해로 설립 54년째를 맞이한 각종 스위치 전문 제작업체 산와전기 공장 라인 대부분은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숙련공들이 차지하고 있다.

 48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이 공장 겸 회사의 정년은 60세다. 하지만 65세까지는 대부분 일할 수 있고 특수한 경우에는 그 이후에도 일할 수 있다. 60세 이상 직원은 현재 8명이며, 60세 가까운 직원이 3∼4명이 된다. 회사 정원의 20% 이상이 우리 나이로 ‘환갑’ 전후인 셈이다. 회사의 최장 근속, 최고령 근무자는 무려 46년 동안이나 회사에 다녔으며 나이는 73세나 된다.

 물론 이 회사 창업주의 아들로 지금 회사를 이끌고 있는 하야시 데쓰오 산와전기 사장도 지난 1984년 36세에 사장직을 승계했으니 올해 62세다.

 하야시 사장에게 65세 이후에도 회사를 계속 다니려면 어떤 조건이 있느냐고 질문을 던지자 재미있는 답이 돌아왔다.

 하야시 사장은 “65세 이후에는 퇴직 전 기본급의 60∼70%를 받으며 여생을 봉사한다는 정신으로 다니려고 한다”며 “65세 이후에는 1년마다 본인 희망에 따라 고용 계약이 갱신되는데, 딱히 큰 조건은 없고 회사에 엘리베이터가 없으니 계단을 올라오지 못하면 자연스럽게 집에 가는 것으로 돼 있다”고 말했다.

 하야시 사장은 자신의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계획으로 요즘 경영수업이 한창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구석에 고민이 크다. 그는 “연세가 높은 직원들은 숙련공이면서도 임금이 상대적으로 낮다는 장점이 있다”며 “하지만 젊은층으로 자연스럽게 기술이 승계되고 이어지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안 하려고 하는 게 더 큰 문제”라고 덧붙였다.

 ◇4500만엔짜리 3차원 측정기를 움직이는 손에도 주름이=도쿄 인근 오다공업지구에 도쿄도 정부가 세운 도쿄도립산업기술연구센터는 주요 검사설비만 40억엔(약 500억원)어치가 들어서 있는 최첨단 시험인증기관이다.

 오다공업지구 내 중소기업은 물론이고 다른 지방 기업과 한국을 비롯한 외국 기업들까지 일본표준규격(JIS) 인증을 위해 이 센터를 찾고 있다.

 장비 가격만 4500만엔(약 5억7000만원)에 달하는 최첨단 3차원 측정기는 할아버지 기술자에 의해 조작되고 있었다. 광 조형장치, 각종 부품용 톱니바퀴 인증장치, 원소분석장치 등 즐비한 시험 기구를 다루는 직원 대부분이 50·60대 전문 숙련공이다.

 가끔 눈에 들어오는 젊은 직원들은 센터 소속이 아니라 시험 의뢰 기업에서 파견된 직원이었다.

 시미즈 히데기 주임연구원은 “고도화된 장비들이기 때문에 숙련된 기술자의 손길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며 고령층 기술자가 많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시미즈 연구원은 “아주 미세한 조작이나 고가의 기기 실험 때는 섬세하고 정확한 움직임이 가해져야 하는데, 그 측면에선 젊은이의 손길이 아쉽다”고 말했다.

 ◇가업 승계 기업이 줄고 있다=도쿄 인근 중소 제조업 밀집지역으로 캐논, 리코, 이스즈자동차 등의 이름 높은 대기업들에 부품을 대주는 젖줄 역할을 해온 오다공업지구의 밑바탕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일본 기업 문화의 커다란 줄기가 됐던 ‘가업승계’가 자꾸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오하시 히로시 오다산업진흥협회 팀장은 “아들이 공장을 승계하지 않으면 공장을 잇지 못하고 바로 사업이 끝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전반적인 불경기로 납품 물량이 줄어든 것이 가장 직접적인 원인이기도 하지만 후계자들이 궂은 일을 하지 않으려 들고, 그 기업의 채산성 부담까지 다 떠안아야 하기 때문에 승계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오다산업진흥협회는 요즘 20·30대 젊은층을 공장으로 끌어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격월로 1회 발간되는 오다공업지구 내 산업정보지 ‘테크노플라자’ 최신호에는 오다공업지구 내 기업에 취업해 일하고 있는 직원들을 불러모아 특별좌담회까지 열었고, 그 내용을 담았다. 참석자들은 “자기 일터에서의 느낌과 경험을 토대로 젊은이들이 중소 제조기업에 많이 들어와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입을 모았다.

 하지만 오다산업진흥협회의 이 같은 노력이 당면한 젊은 기술자들의 이탈이라는 근원적인 현상을 치유하기 위한 처방이라기보다는 그 현실을 더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으로 비쳤다.

 숙련됨과 노련함이 현재 일본 제품의 품질과 안전성을 만들어냈다면 이제는 개방과 혁신의 시대다.

 변화의 흐름에 대응하는 속도가 더딜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래서 지금의 불경기가 더욱 깊고 암울하게 다가온다.

 도쿄(일본)=이진호기자 jh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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