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 `한글입력 방식 표준화` 과학성 최우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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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휴대전화를 비롯한 디지털 기기들에 사용되고 있는 한글입력 방식들을 표준화하겠다는 정부 방침이 보도되었다. 반겨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쪽 구석에 불안감이 자리잡는다.

 한글입력 방식은 거의 대부분의 국민이 많게는 하루에 수십 번씩 사용을 하는 일상 시스템이다. 따라서 현재 사용되고 있는 다양한 방식들을 하나로 통일하겠다는 것은 국민 대부분이 직접적 이해당사자가 되는 매우 중대한 사업이다. 현재 특허청에 등록된 한글입력 방식은 수십 건에 달한다. 그 중 가장 보급이 많이 된 것이 삼성전자 단말기에 채택된 천지인 방식과 LG전자와 KT계열사에 의해 채택된 이지한글(일명 나랏글)이다. 한글입력 방식 표준화를 거론하면, 대뜸 이 두 가지를 후보로 떠올린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식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 특정 방식으로의 표준화를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만약 그것이 최선의 방식이 아니라면, 우리는 스스로에게 그리고 후손들에게 거의 영구적인 고통을 물려주는 것이 아닌가. 표준화 소식을 접할 때 들었던 불안감은 바로 여기서 시작된 것 같다.

 먼 바다로 나가는 배를 처음 타는 선원이나 어부는 처음 며칠 배멀미로 극심한 고생을 한다. 그러나 이내 배의 흔들림에 적응이 되면, 점차 안정을 찾게 된다. 심지어 이들은 육지로 되돌아와 땅에 내리는 순간에 ‘땅멀미’라는 것을 경험하기도 한다. 배의 흔들림이 일순간에 없어지면서, 그것에 길들여졌던 몸이 땅의 평온함에 한동안 적응을 못하는 것이다.

 불편함도 익숙해지면 체감을 못하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그 불편함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것에 둔감해질 뿐이다. 과학성을 제쳐두고,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익숙해져 있는 방식들 중 하나로 표준화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생각하는 것은 매우 무성의한 마음자세다. 만약 과학적으로 더욱 우월한 방식이 어딘가에 존재하는 상황이라면, 익숙해진 무엇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이미 알려져 있듯이, 삼성전자의 천지인 방식은 같은 키에 있는 자음을 연속으로 입력할 수 없다는 치명적 단점을 안고 있으며 모음들을 획으로 조합해 입력해야 하기 때문에 타 방식들에 비해 타수가 많다는 문제를 갖고 있다. 반면에 LG전자와 KT 계열에서 주로 사용하는 이지한글 방식은 복잡한 조합법으로 인해, 학습이 어렵고 손가락 이동거리가 길다는 비판이 있다.

 현재 한글입력 방식만 해도 열 가지가 넘는다. 최근에 발표된 방식들은 거의 하나같이 기존 방식들의 치명적 한계들을 극복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객관적이고도 엄밀한 평가를 통해 그 진위를 가려야 한다.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후손들을 위해 진지한 검증의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요컨대, 정부는 모든 한글입력 방식 대안들을 후보로 놓고, 오로지 과학성만을 기준으로 엄밀한 평가를 해야 한다. 백년, 천년 사용할 방식을 선택하는데, 2010년 현재 우리들이 가장 많이 쓰고 있는 방식이라는 것이 무엇이 중요한가. 어차피 학습시간 10∼20분, 숙련기간 며칠의 문제라면, 우리는 후손들을 위해 기꺼이 땅멀미를 할 수 있다. 정보강국의 국민으로서, 최선이 아닌 자국어 입력 방식을 국가적으로 사용하는 일만은 일어나지 않기를 소망한다.

김태용 (경희대학교 언론정보학부 교수) persuasion@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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