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커스-녹색인증­제:은행 문턱을 낮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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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색기술이 인정받는 시대

 #1 휴대폰에 사용하는 정전용량 방식의 터치센서칩을 생산하는 M사는 최근 주식시장에서 돌풍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경쟁자가 없는 기술을 보유한데다 앞으로 성장 가능성까지 연일 ‘호재’를 쏟아내더니 급기야 상장 첫날 상한가를 기록하는 등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시장이 원하는 기술을 보유한 기업은 대접받는다. 하지만 M사가 그동안 걸어온 길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지금처럼 터치방식 휴대폰이 주류를 형성하지 않았을 무렵 회사는 기술개발에 금전적으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이때 큰 힘이 된 것은 미래 시장을 예측하고 회사의 기술을 평가해준 투자자들. 당시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이들의 투자 덕분에 회사는 물론이고 투자자들까지 쾌재를 부르고 있다.

 ‘될 것 같은’ 기술을 보유한 기업과 그 기술을 알아보는 투자자 모두가 성공한 사례다. 투자기관들은 이런 기업 하나가 열 번의 투자실패를 만회하게 해준다고 말한다. 그들이 유망한 기술을 가진 기업을 찾아다니는 이유기도 하다.

 정부가 올해 녹색기술과 사업에 인증을 해주는 녹색인증제도를 본격 시행한다. 녹색산업 분야에 자금이 활발하게 유입될 수 있도록 녹색기술·녹색사업(프로젝트)이 정부가 제시한 기준에 충족한다는 일종의 ‘확인’을 해주는 제도다. 녹색기술에 대한 평가나 가치판단이 어려운 투자기관, 은행은 기업의 말만 믿고 투자를 감행할 수 없기 때문에 전문기관들이 기술을 평가해 일종의 투자 가이드라인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재정적인 지원 또한 활발해질 전망이다. 정부는 작년 7월 녹색인증제도 도입을 발표하면서 녹색산업 상용화 단계에서 녹색기술 R&D 재정지원을 올해 2조원에서 2013년 2조8000억원으로 확대하고 3000억원 규모의 ‘연구개발 및 사업화 지원 매칭 펀드’를 조성한다고 밝혔다. 중소기업 지원을 위한 ‘녹색중소기업 전용펀드’ 또한 2013년까지 1조1000억원 규모로 조성된다. 최근 산업은행 조사결과에서 녹색투자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자금조달’이 꼽힌 것을 감안했을 때 투자기관 입장에서 다양한 녹색펀드의 조성 분위기는 반가운 일이다.

 정부는 성숙하지 않은 녹색 분야의 자본시장을 키우고 나면 녹색기술을 보유한 기업들이 대접받는 시대가 올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하지만 산업계에서는 녹색인증제도가 기업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되기 위해서는 보다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인증이 자금지원으로 이어져야

 #2 벤처인증을 받은 S사는 2008년 말 기술보증기금에서 받은 보증서를 들고 은행을 찾았다. 그러나 은행 문턱은 예상 외로 높았다. 은행 측이 대표이사 입보는 물론이고 7명의 보증인을 세우고 자필서명을 받아오라고 요구한 것. S사 사장은 “그동안 벤처인증을 받으려고 들인 노력이 허사가 된 것 같은 기분”이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기업 입장에서는 사업초기에 담보나 보증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벤처인증제도를 통한 기업대출 사례를 보면 은행은 여전히 ‘넘을 수 없는 문턱’으로 느껴질 때가 많다. 이 때문에 녹색인증제도의 시행을 두고 산업계에서는 인증을 받으면 지원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서승모 벤처기업협회장은 “정부가 제도를 정착시켜 녹색산업을 활성화하고 기업 활동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는 제도 인증이 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돼야 한다”고 말한다.

 녹색인증 전담기관인 한국산업기술진흥원에서 인증을 받으면 기술보증기금 같은 보증기관이나 금융기관에서 좀 더 유리한 조건을 적용하는 등 실익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대규모로 조성되는 녹색펀드 자금 또한 다양한 녹색기업에 돌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펀드자금 운영 특성상 대부분의 투자자는 기업의 안정성을 보고 투자를 결정하기 때문에 신생기업이나 레퍼런스 사이트(사업실적)가 없는 중소기업은 투자자들에게 외면당하기 십상이다.

 결국 녹색펀드의 투자가 이미 성과를 내고 있는 기업에는 집중될 수 있지만 정작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수혜를 누리기 힘들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제도 시행 전에 녹색기업과 녹색 프로젝트에 관한 신용보증, 벤처캐피털의 초기 자금 지원, 여타 금융권의 투·융자 지원 방안 등이 도입돼야 한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정부는 일단 녹색기업에 대한 투자와 보증규모를 대폭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지난 7월 정부는 녹색 중소기업에 안정적인 자금 공급을 위해 녹색기업과 프로젝트의 신용보증 지원을 올해 2조8000억원에서 2013년 7조원으로 3배 가까이 확대한다고 밝혔다.

 기술보증기금이나 신용보증기금의 운용자금이 확대되는 만큼 기업이 원하는 신용보증의 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금융기관의 한 관계자는 “과거 벤처붐 시기를 생각해보면 정부가 제도의 안착을 위해 특례조항을 적용해 보증기금 손실을 메워주는 등 지원이 있었다”면서 녹색인증제도가 시행되면 정부기관의 보증이 좀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녹색인증이 투자·보증·대출의 무조건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라고 지적한다.

 백승주 기획재정부 신성장정책과 과장은 “담보나 인증서만 요구하는 경직된 금융으로 미래의 성장동력 기업을 활성화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녹색인증을 받은 기업에 대한 투자는 철저하게 시장에 맡긴다는 것이 정부의 정책 방향”이라고 설명했다. 사업화의 불확실성이 높고 투자자금의 회수기간이 긴 특성을 가진 녹색기술·사업·기업이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확실하고 위험한 사업을 선별해 투자하고 자금공급이 이뤄지게 하는 자본시장이나 캐피털이 더 적합하다는 것이다.

 이용석 한국산업기술진흥원 팀장 역시 “인증을 받는 것이 엄청난 금융혜택을 받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며 “인증을 신청하는 기업은 성장 가능성이 있는 녹색기술인지 잘 판단해 인증을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호기자 snoop@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