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은 하늘을 버려야 빛을 얻고, 강은 강을 버려야 바다를 얻고, 꽃은 꽃을 버려야 열매를 얻는다.” 필라코리아 윤윤수 대표는 ‘내가 연봉 18억원을 받는 이유’라는 자신의 저서에서 이 같이 “나를 버려야 세상을 얻는다”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모든 세상의 사물에 동전의 양면이 존재하는 것처럼, 우리 삶에도 음지와 양지가 있기 마련이다. 하나를 얻기 위해선 하나를 버려야 한다. 이 같은 삶의 오묘한 이치는 기업이라는 생명체에도 적용 가능하다.
10대 청소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기 직전, 방황하는 사춘기를 경험하듯이 기업은 성장통을 겪는다. 중소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또 다시 대기업,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전문가들은 탄탄한 조직을 만들고, 초일류 기업을 위해선 국가라는 개념을 지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특히 21세기 신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에게는 국가의 범위를 뛰어넘는 ‘탈국가’ 개념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초국가적 경제블럭이 형성되고 있는 데다 각 나라마다 FTA를 통한 무역장벽을 철폐하고, 규제를 완화 중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삼성전자, LG전자 등 전자 기업들은 이미 글로벌 경영을 실천 중이다. 이들 기업은 ‘한국은 없다’라는 맹렬한 기세로 세계시장을 파고 들고 있다. 초국가 기업 대열에 들어선 지 오래다. 두 회사 모두 유럽, 미국, 동남아 등 전 세계 곳곳에 생산기지를 구축해 놓고 있다.
푸른 눈의 영업사원, 검은 피부의 엔지니어 등 현지인들도 국가를 잊고,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현지인 숫자 역시 9만명까지 늘어났다. 특히 삼성전자의 R&D 투자비율은 어느 IT기업에 뒤지지 않는다. 2009년 상반기 기준으로 삼성전자는 매출액 대비 8.4%를 연구개발(R&D)비로 사용했다. 2009년 삼성전자의 브랜드가치는 175억2000만달러로 세계 19위를 차지했다. 브랜드 가치 역시 2000년 43위(52억2000만달러) 대비 3배 가량 뛰어올랐다.
LG전자도 글로벌 경영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다. LG전자는 회사 매출의 85% 이상을 해외에서 거둬들인다. 현재 LG전자 글로벌 임직원 수는 8만4000명. 이 가운데 한국을 제외하면 5만4000명이 현지인들이다.
이처럼 그동안 세계경영을 해 왔던 두 회사가 특히 올해에는 글로벌 시장에 승부수를 띄운다. 삼성전자는 우선 초일류 100년 기업을 향한 비전2020 달성을 위해 다양한 파트너십 협력체제 확대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생산, 판매, 연구소 등을 합쳐 해외에 약 190여개의 거점을 두고 있다. 뉴욕, 프랑크푸르트, 도쿄 등 3개 지점을 갖고 있었던 1976년에 비하면 60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삼성전자는 앞으로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을 위해 현재 45% 수준인 해외인력 비중을 2020년에는 65%까지 확대한다. 또 한국에서 근무하는 글로벌 직원도 현재 850명에서 2020년에는 2000명까지 늘릴 예정이다. 대졸 여성인력도 현재 9000여명에서 1만5000명까지 확대해 나갈 예정이다.
LG전자도 마케팅 투자 확대와 글로벌 인재확보를 통해 초일류 기업으로 한 단계 도약한다. 우수한 인재를 찾기 위한 LG경영진 모습에서는 초일류 기업을 향한 의지가 엿보인다. 실제로 백우현 LG전자 사장은 지난해 6월 미국 샌디에이고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술담당 임원 15명이 동행했다. 자회사인 LG이노텍 기술임원도 함께했다. 출장 목적은 인재발굴. 백 사장은 회사 인재풀에 등록된 미국 상위 30개 대학 재학생과 IT기업 경력 엔지니어 150명을 직접 만났다. 피면접자들은 서류전형과 전화 인터뷰를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10월에는 일본에서도 테크노 콘퍼런스를 열고 일본 대학 상위 10개 학교 100명의 R&D 인재들을 면접했다.
현재 세계 3대 스포츠 대회 중 하나인 F1과 국제 스노우보드 월드컵을 공식 후원하고 있는 LG전자는 앞으로 마케팅 기업으로 변신할 전망이다. LG전자 최고마케팅책임자(CMO) 더모트 보든(Dermot Boden) 부사장은 “세계경제는 어렵더라도 마케팅 투자는 강화하고 있다”며 “F1 대회 후원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브랜드 투자가 출구전략에서 가장 효과가 높다는 게 LG 경영진의 판단이다.
지난 2007년부터 투자를 확대해 온 글로벌 공급관계망관리(SCM) 구축작업에도 속도를 낸다. LG는 소니를 제치고 세계 LCD TV 2위에 오른 주요 원인으로 SCM 강화를 꼽는다. 가령 한국에서 구매한 뒤 유럽으로 보내는 데 40일 이상 걸리던 자재를 현지에서 직구매하는 방식은 유럽시장에 대한 제품 공급기간을 단축시켰다. 전 세계 해외법인의 주별 생산현황과 주문량을 파악해 적기에 공급하는 시스템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가져가는 안전재고를 없앨 수 있었다. 폴란드 생산공장에서 판매법인을 거쳐 고객에게 배송되던 물류 프로세스를 생산공장에서 고객에게 바로 가도록 정비하자, 생산성이 향상된 것이다.
◆초국적 기업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초국가 기업이라는 신조어를 등장시켰다. 그는 “초국가 기업들은 이미 규모가 매우 커져 그 자체로 몇가지 국민 국가적 성격을 띄게 되었으며, 국민 정부들을 앞질러 행동할 때가 많다”고 밝혔다. 성공한 기업들은 변화를 두려워 하지 않아야 한다. 토플러의 예언처럼, 세계 시장질서는 초국가 기업들이 주도한다. 이들 기업들은 그야말로 해외 시장을 내집 안마당처럼 들락날락한다. 종횡무진이다.
나이키와 델은 대표적인 초국적 기업들이다. 애플도 마찬가지다. 직접 제조라인을 가동하지 않고도, 세계인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는 제품으로 승부하고 있다. 연구개발과 마케팅은 자체적으로 진행하지만, 제조는 아웃소싱을 두는 체제다. 위탁생산전문기업(EMS)에 제품 생산을 맡기고 있다.
스티브 우즈니악과 스티브 잡스가 1976년 산타클라라밸리에 설립한 애플은 시대를 앞서 나가는 시각을 바탕으로 세계 IT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꿔오고 있다. 매킨토시 컴퓨터에 이어 최근 유행하는 앱스토어의 전형인 아이튠스, MP3플레이어 아이팟, 휴대폰 아이폰까지 매 시기별로 획을 긋는 제품으로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인터넷의 등장은 물리적인 국경 개념을 단 번에 허물었다. 더 이상 국경을 기준으로 국가가 나눠지지 않는다. 시장은 국경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이베이는 세계인들이 접근가능한 인터넷에 거대한 벼룩시장을 만들었다. 1억명 이상의 사람들이 오늘도 이베이에서 물건을 검색하고, 구매한다. 한국인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빌 게이츠 회장이 이끄는 MS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검색왕 구글이 국가와 국경을 허무는 초국가 기업의 선두주자로 확실한 자리매김했다.
일본 자동차 업체인 혼다는 동남아 오토바이 시장에서 독보적 1위다. 혼다는 세계 시장을 6대 경제권으로 구분, 대부분의 경영을 현지법인장에게 맡긴다.
김원석기자 stone20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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