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를 발급받으면 3만 원을 드려요”
직장인 이모(34)씨는 최근 가족과 함께 서울대공원을 찾았다가 현금을 내걸며 카드 가입을 권유하는 모집인를 만났다. 주차장 주변을 살펴보니 한 눈에도 카드 모집인으로 보이는 사람 5-6명이 차에서 내리는 가족 단위 사람들을 상대로 회원 모집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이씨와 부인 오모(32)씨는 모두 3장의 카드를 발급받아 그 자리에서 현금 9만원을 받았다. 모집인은 직장이나 소득 등도 묻지 않았다.
이씨는 “최근에만 2차례나 이런 카드 영업인을 만났다”며 “어린 자녀가 있어 자주 놀이공원과 어린이를 위한 전시회 등을 다니는 편인데 이런 경험은 처음이다”고 전했다. 대학교수 유모(34.여)씨는 카드를 발급받고 지난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렸던 르누아르전을 ‘공짜’로 관람했다.
친구와 함께 미술관에 들어가려던 유씨에게 한 모집인이 다가와 1만2천 원짜리 티켓 2장을 줄테니 카드를 발급받으라고 끈질기게 권유했던 것. 아주머니는 “최소 3개월 간 7만원 이상 사용해 줄 것”과 “혹시 자르더라도 6개월 후에 잘라줄 것”을 부탁했다. 그래야만 월급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 ‘카드대란’은 옛말…불법모집 다시 기승=2003년 무분별한 신용카드 발급으로 카드 연체율이 급증하고 신용불량자가 속출했던 이른바 ‘카드대란’이 터진지 6년. 카드 불법모집이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6년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감독당국의 눈을 피해 카드 모집인들의 불법 행태가 보다 교묘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고정 부스 없이 길거리에서 카드 회원을 모집하는 행위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어 이들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놀이공원, 공연장, 전시회 등을 찾아다니며 ‘일대일 마케팅’을 펼친다.
놀이공원 입장권이나 공연장 티켓 등을 공짜로 주고 연회비를 대신 내준다며 접근하면 기존 카드가 있는 사람들도 귀가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정식 모집인은 1개 금융기관의 카드 밖에 취급할 수 없다. 하지만 이들은 팀을 짜서 영업하는 편법 등을 동원해 3~4개의 카드를 소비자에게 보여주며 ‘입맛대로’ 가입할 것을 권유한다.
제시하는 경품도 갈수록 다양해져 1인당 3만원 가량의 현금이나 ‘짝퉁’ 명품 가방 심지어는 비행기 티켓까지 제시한다.
고등학교 교사 김모(35)씨는 “얼마 전 학교에 온 카드 모집인이 명품 D브랜드 벨트와 지갑, 자동차 보조키 등을 경품으로 제시해 하나 들었다. 3개 카드 중에서 하나 고르라고 했다. 그 전(前) 주에 온 모집인은 제주도행 비행기 티켓을 경품으로 제시했다”고 말했다.
연회비의 10%가 넘는 경품이나 현금 제공은 명백한 불법 모집이지만, 모집인들은 수당의 일부로 경품을 마련해 과당 경쟁을 벌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이 11개 카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모집인들은 카드가입 1건당 1만5천~4만9천 원을 받는다. 또 가입자들이 일정기간 이상 기준금액 어치만 사용하면 다시 1만~4만4천 원의 수당을 받는다.
L카드 모집인 조모(37)씨는 “누구나 신용카드 1~2장 쯤은 갖고 있기 때문에 불법인 줄 알지만 경품을 들고 길거리 영업에 나설 수밖에 없다. 가입고객이 3개월동안 매달 7만원 이상 써주면 추가 수당이 나온다. (고객들이) 대부분 써주시는 편이다”고 말했다.
◇공짜 좋지만 결국 소비자 부담=카드 모집인이 스스로 비용을 부담해 경품을 마련하는 만큼 소비자에게는 이득이 되는 것 아니냐는 반론도 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카드사들의 영업비용은 올해 2분기에 2006년 4분기 이후 최고 수치를 기록했다. 카드회원 모집과 유지, 마케팅에 무려 1조원이 넘는 1조3천173억원의 비용을 쏟아 부었다.
이 같은 모집비용은 결국 카드 수수료 원가에 포함돼 카드 사용자들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신용카드 현금서비스의 경우 연 이자율이 무려 26%에 달해 카드 사용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한국금융연구원 이재연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높은 카드 현금서비스 이자율 등에는 회원 모집비용이 상당부분 들어가 있을 것이다”고 분석했다. 더구나 카드시장에 새로운 강자들이 뛰어들면서 이 같은 과당경쟁이 더욱 확대될 우려도 있다.
2천450만명의 이동통신 가입자를 보유하고 있는 SK텔레콤은 시중은행과의 제휴를 통한 신용카드 사업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KT는 비씨카드 인수를 타진하고 있으며, 매머드급 시중은행인 하나금융은 카드사업을 분사시켜 ‘하나카드’를 곧 출범시킨다. 비씨카드를 통해 카드사업을 해오던 농협도 독자적인 카드 브랜드를 내놓는다. 올해 6월말 현재 신용카드 발급건수가 1억장을 넘어 시장은 포화 상태에 이르렀지만 신규 진출자는 갈수록 늘어 시장을 지키거나 빼앗기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최근 카드 불법모집이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금융감독원 김영기 여신전문총괄팀장은 “불법모집 등 과당 영업경쟁으로 향후 부실 회원이 늘어나면 건전성 등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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