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까지 일선 학교에서 게임을 활용한 교육과 소양교육(literacy)을 진행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조차 어려운 분위기인 게 사실입니다. 운동을 하듯 머리를 식혀 줄 정도로 게임을 즐기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은데 말입니다.”
‘게임 활용 교육(g러닝)’ 시범학교로 지정돼 올해부터 자신의 수학 수업에 게임을 활용하기 시작한 서울 발산초등학교 김학래 교사. 그는 청소년들이 게임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면 등급 연령에 맞는 게임을 선택하고 과도하게 하지 않도록 하는 소양교육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콘텐츠진흥원이 개발한 게임 소양교육 교재 ‘게임 안으로, 게임 밖으로’를 방과 후 재량수업에 적용할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았다. 아이들의 게임 이용을 터부시하는 시선은 학교에서 소양교육을 하는 것 역시 ‘학교에서 공부나 시키지 무슨 게임 교육’이라는 차가운 인식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게임의 역기능을 최소화하고 게임을 제대로 된 국민 여가로 즐기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규제가 아니라 ‘게임 리터러시’ 강화다.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길러주는 것이 기존 ‘미디어 리터러시’라고 한다면 게임 리터러시는 게임의 부작용을 게임 이용자와 보호자(부모)가 스스로 최소화할 수 있는 소양을 길러주는 것이다.
아무리 유혹이 많아도 이용자가 하지 않으면 무력해지는 이치다. 강한 정부규제는 후유증을 동반하는 반면 리터러시는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다준다. 때문에 미국·중국·일본·독일·프랑스 등 해외 선진국에서는 기업 자율규제와 게임 리터러시라는 두개의 축을 중심으로 성숙한 게임문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세계적 게임 연구자인 바바 아키라 일본 도쿄대 교수는 “등급에 맞는 게임 선택을 체득시키거나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스스로 제어하는 방법을 몸에 익히는 게임 리터러시가 역기능을 막는 근본적 처방”이라며 “게임을 플레이하는 아이들, 보호자, 개발자 모두 리터러시를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는 아직 ‘걸음마’ 수준=한국에서 게임 리터러시라는 말은 생소하기만 하다. 그나마 지난해 게임산업진흥 중장기 계획에 게임 소양교육을 표방한 ‘게임 리터러시’ 강화가 반영되면서 처음으로 공론화됐다. 이 계획에 따라 콘텐츠진흥원(구 게임산업진흥원) 게임 리터러시 교재 ‘게임 안으로 게임 밖으로’를 펴냈다. 기존 게임 관련 재량활동 교재가 게임 중독과 치료 등 게임에 대한 부정적인 면만 다뤄왔다면 이번 교재는 진일보한 측면이 있다.
사회문화적 접근과 문화소통의 수단으로서 게임의 특성을 이해하고 문화적 가치 확산을 위해 게임 리터러시가 확대돼야 한다는 시각이 반영됐기 때문이다. ‘게임과 놀이’ ‘게임과 이야기’ ‘멋진 게이머 되기’ ‘게임을 만들자’ 총 4단원으로 구성돼 신구세대의 놀이 문화와 당당한 게이머가 되기 위한 방법 등 흥미와 소양을 고루 갖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일선 학교에서 학교장 재량 교육으로 적용되기까지는 험난한 길을 예고했다. 입시 준비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교육 과정에 게임 관련 교육이 들어서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교재 발간 작업에 참여한 김문경 콘텐츠진흥원 연구원은 “학교에서 채택되려면 가장 먼저 교사가 받아들이고 학교장, 학부모를 설득해야 한다”며 “교재를 가지고 학교 담당자를 만나면 게임 중독 예방을 위한 부분만 들여다보는 게 현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해외서는 이미 보편화=해외에서는 자율 규제 기구를 중심으로 부모가 가정에서 아이들의 게임 이용을 지도할 수 있는 게임 리터러시 강화가 이미 보편화됐다. 독일 게임협회인 BIU는 지역 사회에서 부모들이 자녀의 게임과 디지털 콘텐츠 이용을 컨트롤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모임을 정기적으로 개최한다. 영화·모바일·게임 등 대부분 콘텐츠에 대한 내용을 지원하고 있다. 또 베를린에서만 해마다 5만여권의 소양교육 책자를 배포해 부모와 게임하는 자녀가 어디서나 쉽게 게임 리터러시를 접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올라프 볼터스 BIU 대표는 “규제만으로는 아이들을 안전하게 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이런 활동은 ‘하우 투 유즈 게임(how to use game)’을 알려주는 보편적인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비디오 게임의 자율 등급제와 모바일 사이트 자율규제 기구인 콘텐츠심의모니터링협회(EMA)가 그 역할을 담당한다. EMA는 커뮤니티 인증을 통과한 모바일 사이트 및 게임에 소양교육 프로그램 노출을 의무화했다.
EMA의 커뮤니티 인증은 청소년들이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는 사이트·게임이라는 의미로 사업자는 예외없이 이 기준을 따른다. 특히 교육 프로그램을 얼마나 많은 사람이 봤는지에 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일정 수준 이상의 페이지뷰 건수가 나오지 않으면 인증 취소도 고려하는 등 적극적인 리터러시 정책을 펴고 있다. 요시오카 EMA 사무국 간사는 “모바일 게임이나 사이트를 이용시 교육 프로그램을 클릭하는 횟수가 적어지면 더 많은 이들이 보도록 하는 강력한 규정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오락소프트웨어등급위원회(ESRB)와 전미부모교사협회(PTA)가 손잡고 지난해 4월부터 부모에게 게임 등급과 아이들의 게임 이용을 가이드하는 교육 책자를 배포하기 시작했다. 미국 전역에 분포한 2만6000여개의 PTA 사무실에 이미 배포됐으며 교육 책자에는 비디오게임에 대한 부모들의 가이드와 온라인게임 이용을 제어하는 방법들이 수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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