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잣대 버리고 자율에 맡겨라

각종 규제에 발목잡힌 성장동력 게임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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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서울행정법원은 온라인 게임머니 환전회사를 운영하는 문 모씨와 전 모씨가 서울 강동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세무서가 게임머니를 ‘재화’로 간주, 부가가치세를 매긴 부분은 합당하다는 판단이다. 언뜻 단순해 보이는 이 판결은 그러나 상당한 혼란을 야기했다. 현행 게임산업진흥법은 온라인 고스톱·포커 등에 쓰이는 게임머니의 거래를 불법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사행성 방지를 위한 사이버머니 규제 방침과 사이버머니가 합법적 재화 가치를 갖는 현실 사이에서 일반인들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파프리카랩(대표 김동신)은 지난 4월 애플 아이팟터치 및 아이폰용 게임 ‘이성을 사로잡는 당신의 지성2000’을 일본 시장에 출시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일주일 만에 일본 앱스토어 전체 6위, 게임 부분 3위에 오르며 인기를 얻은 것.

그러나 애플 아이튠스의 한국 사이트에선 정작 이 게임을 찾을 수 없다. 국내에서 게임 출시를 위해 거쳐야 하는 등급 심의과정이 번거로울 뿐만아니라 비용과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국내 시장을 포기하고 해외로 눈돌리는 게임업체가 적지 않다. 그런데도 문화부는 이번 정기국회에 등급분류 반려 등 더욱 강력한 규제안을 담은 게임산업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킬 계획이다.앞에서는 수출 역군이라며 게임을 추켜세우면서 뒤에서는 폭력·사행성을 조장한다며 뒷덜미를 잡는다. 게임을 이해하지 못하는 기성세대가 급을 매기고 규제안을 낸다. 미래 성장동력이라며 정부가 적극 육성하는 대한민국 게임산업의 2009년 현주소다.

 진흥이 주 목적인 게임산업진흥법은 ‘게임산업규제법’이라고 불러도 어색하지 않다. 사건 하나 터질 때마다 국회의원들이 ‘청소년 보호’라는 명분 아래 앞다퉈 게임 규제안을 발의하는 것도 다반사다. 최근 2년 동안 거론된 규제안만 10건이 넘는다. 정부의 직접적이고 과도한 규제는 기업과 이용자의 선택의 자유를 가로막고 자생적인 산업의 선순환 구조 정착을 더디게 한다.

 외국은 대조적이다. 전자신문이 ‘포스트게임’ 기획을 위해 미국·일본·독일·중국 4개국을 현지 취재한 결과, 민간과 정부가 협력하는 자율 규제(Co-regulation) 모델이 정착했다. 유럽에서는 자율기구가 등급 시스템(PEGI)을 만들어 제시하고, EU 국가의 게임기업들은 이를 철저하게 지키는 제도가 자리를 잡았다. 일본의 컴퓨터엔터테인먼트협회(CESA)는 이용자를 직접 참여시켜 자율 규제의 실효성을 높인다. 독일 자율규제 기구인 인터랙티브소프트웨어협회(BIU) 올라프 볼터스 대표는 “정부로부터 권한을 위임받아 게임에 등급을 부여하는 공동 관리 시스템을 운용하며 리터러시(소양) 교육도 지속적으로 한다”고 말했다.

 민간이 자율 규제를 하는 동안 정책기관은 게임을 산업으로 인정하고 자유로운 시장 활동을 보장한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해 각 회원국에 보낸 비디오게임 등급 정책에 관한 문서에서 “청소년들이 과도한 폭력 등 부적절한 내용을 담은 게임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하다”면서도 “게임은 다른 미디어와 마찬가지로 ‘표현의 자유’를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점을 명확히 했다. 미국은 아예 게임 산업이나 비즈니스 모델에 어떤 사전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최근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게임법 개정안에는 상징적이나마 자율규제의 근거를 뒀다. 신재민 문화부 차관 역시 얼마 전 기자간담회에서 “어쩔 수 없는 부작용을 이유로 전반적 규제를 펴면 산업 성장이 저해된다”며 규제 일변도에서 탈피할 것임을 시사했다. 전자신문 미래기술연구센터(ETRC)가 지난 7월 국내 게임 이용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리서치 결과, 응답자의 60% 이상이 게임 부작용의 해결 주체를 정부나 기업이 아닌 이용자 스스로라고 말했다.

 황승흠 국민대 법대 교수는 “게임기업은 이용자 선택이 두려워 스스로 강력한 자율규제를 하고 정부는 기업의 자율적인 선택과 비즈니스 활동을 장려하는 구조가 서둘러 정착돼야 한다”고 말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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