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출범과 함께 정보통신부 해체가 현실화되자, 이를 반대하던 쪽도 이를 찬성하던 쪽도 논란을 잊고 ‘기대반 우려반’으로 산업 활성화에 매진했다. 그렇게 1년, 그리고 반년이 더 지난 지금 산업계는 다시 한번 IT컨트롤타워 부재에 따른 득실의 주판알을 튕기면서 고민에 빠져 들고 있다. 고민의 핵심은 이제 IT컨트롤타워의 설치라는 부수적인 문제가 아니다. 과연 이대로 IT코리아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미래 방향을 제시할 주체가 불분명해지면서 기업들도 방향성을 놓고 헤매고 있다. 방향이 흔들리면서 기업들의 투자 의욕 또한 불안함에 희석되고 있다.
이를 인지한 정부는 청와대까지 나서 ‘IT코리아의 미래 비전’을 제시했지만, 좀 더 지켜보겠다는 반응의 주류다. 일각에서는 현 정부의 IT를 보는 인식이 변화했다기 보다는, ‘제스처’에 불과하다는 냉소적 반응까지 보인다. 길을 잃어버린 한국 IT. 무엇이 문제인가.
◆ IT, 자신감의 실종
지난 2월 현 정부 출범 1년을 돌아보던 IT인들 사이에서 ‘IT’의 약자가 무엇인지에 대한 뻔한 질문이 회자했다. 근데 ‘이제는(I) 틀렸다(T)’가 당시의 정답이었다. 더 신기한 것은 당시 대부분의 IT인들이 이 어려운 정답(?)을 쓴 웃음과 함께 아주 쉽게 맞춰냈다는 것이다. 모두 다 공감해서 였을 것이다.
그리고 다시 반 년 이상이 지난 9월. ‘이제는(I) 틀렸다(T)’가 ‘이번엔(I) 틀림없나(T)’로 바뀌었다. 기대감과 우려감이 교차할 만한 메시지가 청와대와 정부로부터 날아든 것이다. 정부가 IT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IT특보를 임명하고,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자리에서 IT를 ‘대한민국의 영원한 힘’으로 인정하며 ‘IT코리아 미래 청사진’을 펼쳐 보인 것이다. 대통령이 IT를 인정한 것은 사실상 처음이었다.
IT인들로서는 충분한 동기부여가 될 만한 계기지만, ‘풀죽은 IT’는 두고볼 일이라는 미온적 반응에 그쳤다. 비전은 발표됐지만, 방법론에 대해서는 구체화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투자금액도 기존의 것을 집대성한 것에 불과하다는 여론과 IT가 부처별로 분산된 상황도 적극적으로 바꾸려는 의지는 없는 것 같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무엇보다 이번 정부가 ‘IT에 무심했다’는 생각을 바꾸기에는 시간과 지속적 의지 표명이 필요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정부 총연구개발(R&D) 투자 규모에서 부동의 1위였던 정보·전자 분야가 올해 처음 생명 분야에 1위 자리를 내줄 전망이다. 정부가 기초·원천 기술 R&D를 강화하면서 상대적으로 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줄인 것과 첨단산업분야를 이끌어 줄 정부 주체가 불분명한 것이 배경이란 판단이다. 전문가들은 정보통신부의 해체로 정보통신진흥기금 등이 다른 분야로 전용된 결과라는 분석도 내 놓고 있다. 실제로 옛 정통부의 기능이 4개 부처로 분리되면서 기금과 각종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지속되고 있고, 이런 갈등은 정책집행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으로 표출되고 있다.
정통부를 이어받은 방송통신위원회의 행보도 IT인들의 ‘자신감 실종’을 부채질 했다. 지난 1년간 정보통신산업 진흥보다 미디어법 논란 등 정치적 싸움에 골몰했다. 이 과정에서 방통위는 정보통신인들의 기피부처가 됐다. 지식경제부는 IT융합라는 말을 통해 IT자체에 대한 관심을 희석해왔다. 그 사이 미국 일본 등 선진국들은 엄청한 국가 예산을 IT에 쏟아붓고, IT 뉴딜로 새로운 통신인프라 확보와 질 좋은 고용을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잇따라 발표했다.
물론 IT인들이 실의에 빠졌다고 해서, 해야할 일을 게을리하지는 않았다. 수출을 주도하고 IMF에 이어 세계 금융위기 극복의 선봉에 섰다. 그럼에도 IT는 지원산업, 주변산업이라는 꼬리표가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정통부 해체이후 기술혁신에 기초한 큰 미래그림이 없어진 것도 IT인들의 가슴을 답답하게 한다. 미래전략위원회·지식경제부·방송통신위원회가 공동으로 발표한 IT코리아 미래비전에 업계가 아쉬움을 나타내는 것은, 이를 기획한 모든 담당자들이 각 부처에서 현재 자신들이 들어다보고 있던 정책을 하나로 묶어 패키지로 발표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진정 IT코리아의 미래 설계라면, ‘어떤 분야의 글로벌100대 기업을 몇 개 만들겠다’는 기업들이 선언해야 할 몫을 대신 선언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인 생태계까지 고려한 차세대 미래 전략 모델을 발굴하거나, 최소한 그런 모델 발굴을 위한 조직적인 체계 구성 계획 등을 담아야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IT의 자신감 실종에는 정보통신부 해체로 심리적 구심점이 사라지고, IT 가치사슬이 무너진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반영돼있다. 또 IT 강국에 대한 과거의 향수와세계 정상으로 재도약하고픈 갈망이 혼재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난 1년 IT 정책 기조는 ‘IT 기능 분리, 산업부문별로 내재화’로 표현할 수 있다. 정부의 이같은 기조의 배경에는 이미 ‘IT 코리아 넘버원’이라는 명성을 얻을 만큼 한국 IT 산업이 성숙기에 들어섰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IT 사령탑 역할을 한 정보통신부를 해체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모든 부처가 IT를 이야기 하지만, IT와 기존산업(업무)의 융합 정책은 부처 고유업무에 묻혀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이와는 반대로 과거 영역 다툼이 치열했던 분야에서는 여전히 자신들의 권한 밑에 두기 위한 밥그릇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대기업은 자신의 길을 묵묵히 걷고 있지만, 중소기업들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중소기업 자신의 아이디어를 정책적 흐름으로 판단해 줄 정부측 대상이 누구인지도 불분명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진흥 따로, 정책 따로’인 상황은, 정책에 기초한 관련 기술 및 장비 등의 R&D 로드맵을 갈망하는 중소기업에게 허탈감만을 안겨준다.
현 구조에서는 어느 부처도 세계 IT의 흐름을 주시하며 미래를 제대로 예측해 강력하게 밀어붙일 수 있는 능력·시간·조직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심규호기자 khsim@etnews.co.kr
◆ ICT산업 생태계 조성이 시급
언제부터인가 ‘IT가 실종됐다’라는 표현이 심심찮게 들린다. 아니 좀더 정확히 표현하면 IT정책이 실종됐다고들 한다. 정보통신인프라 최강국이자, 휴대폰 하나로 금융거래는 물론 버스까지 자유롭게 이용하는 한국, IT가 경제 부활을 견인하고 있는 한국에서 IT가, IT정책이 실종됐다는 표현은 왠지 어색하다.
전문가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보다 분명한 진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전문가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한국IT의 문제는 ‘미래’에 있다. 지금 한국 경제를 이끌고 있는 ‘현재의 대한민국 IT’는 과거 땀과 투자의 산물이라는 것. 현 정부가 차세대성장동력으로 꼽고 있는 IPTV와 와이브로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진흥따로, 규제따로, R&D 별도의 구조속에서는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기능은 현저하게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모두가 현상을 쫒다가 실기하게될 우려가 커지는 대목이다.
한국의 IT는 지난 15년간 광대역 초고속 정보통신망의 과감한 구축과, 이를 활용하는 ICT 전반의 생태계 조성이 거름이 됐다. 그리고 빠르게 변하는 IT산업의 특성을 고려해 기술과 정보를 집중해 관리하고, 법적걸림돌로 일원화된 창구를 두고 해결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 정부는 IT산업의 진흥을 담당하는 부처가 지경부·방통위·행안부·문화부로 쪼개져 있고, 모든 부처가 IT와 관계를 맺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IT기업들은 관련부처와 일일이 관계하며 인허가를 받아야 하고, 심지어는 전혀 관심도 이해도 없는 공무원을 상대로 교육(?)까지 시켜야 일을 풀어나갈 수 있는 지경에 이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IT정책이 분산돼 있다 보니, 실제 기업들에게 필요한 것을 정부 부처가 종합적으로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내용을 모르니 당연히 예산은 집행되기 어렵고, 눈에 보이고 생색이 나는 분야에만 모든 부처가 관심을 기울이게 된다. 결국 미래에 대한 준비가 산업계 따로, 부처 따로 겉돌수 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IT에 대한 폭좁은 이해가 이같은 기형적인 상황을 만들어냈다. 1990년대만 해도 생소했던 IT가 정보통신부 시절을 거치면서 하나의 산업으로서 일반화되고 큰 성과를 도출해 낸 것이 IT산업계로서는 부메랑이 됐다. IT의 효과가 감지되고 일반화되면서 부처 여기저기서 자신들이 더 잘할 수 있다며 손을 들고 뛰어들어 IT 성장의 구심점이 흐려져 버린것이다.
최근 방송통신위원회의 조심스러운 ‘중장기 ICT R&D 체계 수립’ 행보가 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다. IT융합이 아닌, IT산업 자체의 미래를 위해서는 기술트렌드를 바탕으로 한 큰 그림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정통부 해체 이후 ‘차세대 ICT 서비스’에 대한 정책이 전혀 발굴되지 못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배경이다.
하지만 현 체계에서는 IT미래설계에는 한계가 있다. 기술 리더십을 바탕으로 각 부처에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역할을 배분할 수 있는 조직이 없다.
최근 미래기획위원회가 발표한 ‘IT코리아 미래전략’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생태계 조성에 대한 고민을 감지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부처별로 따로따로 발표할 것을 하나로 묶는다는 것 만으로는 결코 융합도 시너지도 기대할 수 없다.
현 시점에서 IT의 미래를 만드는 길은 ‘생태계 조성’에 있다. 유관 산업간 유기적 연계가 투자·가치창출·성과·재투자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출할 수 있는 기반이 되고, IT 방향성 확보의 첩경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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