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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와 비교하는 순간 지고 있기 때문에 ‘할리우드’란 표현을 쓰기조차 싫지만 이번 영화는 타도 할리우드가 목표입니다. ‘폴, 엄마가 간다’는 새 세계를 개척해나가는 작품이 될 것입니다.”
‘은하철도999’ ‘메트로폴리스’ 등 연출한 작품마다 일본 애니메이션 역사에 획을 그은 린 다로 감독(68)이 아시아 애니메이션 역사를 새롭게 쓸 채비를 하고 있다.
한일 합작으로 만들어질 풀 3D 애니메이션 ‘폴, 엄마가 간다’는 제작비만 180억원이 책정된 대작이다. 목표 시장도 처음부터 글로벌이다. 2D 애니메이션이 주류인 일본과 극장용 애니메이션에 인색한 한국이 전 세계 스크린을 목표로 하는 풀 3D 애니메이션에 도전하는 것은 얼핏 무모해 보인다.
하지만 일흔을 앞둔 노장 감독은 “흥분되고 가슴이 두근거린다”며 “한국과 일본 모두 각오가 대단하다”고 애니메이션 제작에 임하는 소감을 말했다.
시작은 ‘클래식’ ‘올드보이’의 제작자 지영준 프로듀서가 기획안을 일본 측에 제안하면서부터다.
린 다로 감독은 “항상 새로운 것을 찾는데 기획 내용이 새롭고 3D 애니메이션의 폭을 넓힐 수 있을 것 같아 함께하게 됐다”며 동기를 설명했다.
그는 “지금까지 풀 CG 애니메이션이 미국의 픽사를 중심으로 발표되는데, 미국과는 전혀 다른 풀 CG 애니메이션을 언젠가는 만들어내야 한다”며 “이 작품이 그 계기가 되고, 꼭 성공시켜야 한다”고 확신했다.
린 다로 감독은 학창시절 영화에 빠져 지내다 일본 최초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도에이 동화에 ‘이 회사에 입사하지 못하면 죽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입사한 것으로 유명하다. 입사 이후에도 크게 회사에 애정이 없던 그는 “‘철완아톰’의 원작자 데쓰카 오사무를 만나면서 애니메이션 분야의 일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후 밀림의 왕자 레오, 은하철도999와 같은 작품의 감독을 맡게 됐다. 특히 은하철도999는 아이들의 전유물이던 애니메이션의 세계에 어른들까지 끌어들여, 일본 애니메이션의 소비층을 두텁게 했다.
린 다로 감독은 “데쓰카 오사무 등 자신을 주위에서 서포트해주는 사람을 만나서 운이 좋았다”며 겸손해 했다.
풀 3D 애니메이션은 철저히 컴퓨터 그래픽으로만 작업된다. 그는 풀 CG를 이용할 때 표현의 폭이 넓어지기 때문에 이것이 스토리에도 반영될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하지만 사람들을 재미있게 해주는 근본적인 스토리텔링은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게 그의 견해다.
린 다로 감독은 기술과 예술적 표현력의 관계에 대해서도 “둘 다 중요하지만 아티스트들이 빨려들어가서 좌우되면 안 된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과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에게도 “소프트웨어가 우수하다 해도 너무 의지하지 말아라. 오래된 것도 충분히 구사해서 자신의 표현력을 담아라”고 조언한다고 한다.
그는 “테크놀로지의 훌륭함과 좋은 아이디어가 만나는 지점에서 우수한 작품이 나온다”고 강조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