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의 IT문화 이제는 학교다] (161)인터넷 탄생 40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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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넷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게 됐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e메일을 확인하고, 지인의 미니홈피나 블로그에 들어가 시시콜콜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은 삶의 자연스러운 일부분이 됐습니다. 무언가에 대해 궁금증이 생기면 가장 먼저 찾는 것도 인터넷입니다. 거추장스럽게 차려입고 집밖을 나가는 대신 클릭 몇 번으로 필요한 물건을 사기도 합니다. 다급한 금융 업무, 꼭 필요한 공공 업무 처리에도 인터넷은 빠질 수 없는 수단이 됐습니다.

인터넷의 나이는 몇살일까요? 지난 9월 2일은 인터넷이 태어난 지 꼬박 40년이 되는 날이었습니다. 1990년대 이후 현대인의 삶을 급격히 바꿔놓은 인터넷이 어느덧 사람으로 치면 중년의 나이를 먹은 것이지요. 이번 호에서는 인터넷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알아봅니다.

Q:인터넷은 어떻게 탄생했나요?

A:40년 전 인터넷은 군사적 목적으로 세상에 등장합니다. 1969년 9월 2일 미국 캘리포니아대학(UCLA) 렌 클라인록 교수와 그의 연구팀은 약 4.6m 길이의 케이블로 컴퓨터 2대를 연결해 정보를 주고받았습니다. 당시 미 국방부 고등연구계획국(ARPA)은 비상시에도 통신이 가능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아르파넷(ARPAnet)’이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프로젝트에 참여한 렌 클라인록 교수팀이 성공한 이 실험은 차후 세계를 뒤흔든 인터넷이 탄생한 역사적인 순간으로 기억됩니다.

약 한 달이 지난 10월 29일에는 장소가 다른 두 연구소 컴퓨터가 교신하는 데 성공합니다. UCLA와 캘리포니아의 먼로파크에 위치한 스탠퍼드대연구소에서 ‘logon’이라는 글자를 주고 받았습니다. 얼마 후에 UC 샌타바버라와 유타대학도 비슷한 실험을 해냈습니다.

Q:40년 동안 인터넷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A:현재의 인터넷이 탄생할 때까지 인터넷은 많은 사건과 전기를 맞으면서 성장했습니다. 최근 AP통신은 인터넷 역사의 기념비적인 사건들을 소개했습니다. 주요 사건을 연보로 정리합니다.

※인터넷 태동에서 현재까지(1969∼2009 연보)

1969년. 9월 2일 UCLA의 한 연구실에서 렌 클라인록 교수와 연구진 20명이 4.6m짜리 케이블을 이용해 두 대의 컴퓨터를 연결, 데이터를 주고받는데 성공.

1970년. 아르파넷이 처음으로 서부를 벗어나 동부에 있는 매사추세츠의 BBN테크놀로지와 교신하는 데 성공. UCLA·스탠퍼드대학·유타대·UC버클리 4곳에 교신소(node)가 마련 됨.

1972년. 레이 톰린슨이 e메일을 개발. 기존의 편지시스템과 차별화하기 위해 ‘@(at)’을 도입함.

1973년. 알파넷을 통해 외국(영국·노르웨이)과 연결하는 데 성공.

1974년. 빈트 서프와 밥 칸이 전송제어프로토콜(TCP) 기술을 개발, 여러 개의 네트워크를 동시에 연결할 수 있게 됨. 이는 1983년 1월 기술 표준으로 정식 채택됨.

1983년. 도메인 체계에 대한 논의가 오감. 이듬해 ‘.com’ ‘.gov’ ‘.edu’ 등이 등장함.

1988년. 초기 웜 바이러스의 하나로 알려진 모리스(Morris)가 수천개의 컴퓨터를 감염시켜 무력화 함.

1989년. 후에 AOL로 사명이 바뀐 퀀텀컴퓨터서비스(Quantum Computer Services)가 맥킨토시와 애플 II 컴퓨터에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함. 2002년까지 2700만 미국인 이용자를 확보.

1990년. 월드와이드웹(www) 등장. 팀 버너스 리가 유럽의 핵 연구소 CERN에서 컴퓨터를 원격 조정할 목적으로 개발함.

1993년. 웹 브라우저 모자이크 출현. 모자이크는 그래픽과 문자를 하나의 페이지에 보여주는 최초의 웹 브라우저로 일리노이대학에서 마크 안드레센 등이 소개함.

1994년. 모자이크 개발진이 세계 최초의 상용 웹브라우저 넷츠케이프를 개발, 인터넷 업계에 일대 혁명을 예고. ‘스팸메일’ 용어 등장.

1995년. 온라인 서점 아마존이 등장, 전자 상거래를 시작함.

1996년. 미국에서 온라인 포르노그래피 금지법안 통과. 후에 핵심 조항이 헌법 불합치 판결을 받지만 인터넷 규제에 대한 논의가 시작 됨.

1998년. 스탠퍼드대학 기숙사에서 구글 태동하다. 미 정부가 인터넷주소관리기구(ICANN)에 도메인 이름 정책을 위임. 미 법무부와 20개 주에서 MS를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으로 고소함.

1999년. 세계 인터넷 인구 2억5000만명 돌파. 온라인 음원 공유업체 냅스터가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음반산업을 완전히 뒤바꿔 놓음.

2000년. 인터넷 업계 침체기. 90년대의 닷컴 붐이 잦아들고 IT업체들이 어려움을 겪음. 아마존, e베이 등 대표 인터넷 업체가 처음으로 광범위한 서비스거부공격(dos)을 받음.

2002년. 세계 인터넷 인구 5억명 돌파.

2004년. 하버드대학 2학년생 마크 주커버그가 페이스북 창시.

2005년. 온라인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 등장.

2006년. 세계 인터넷 인구 10억명 돌파.

2007년. 애플 아이폰 출시. PC를 통한 인터넷에 익숙한 이들에게 모바일 인터넷 세상을 경험케 함.

2008년. 세계 인터넷 인구 15억명 돌파. 중국의 인터넷 인구가 2억5천만명을 돌파하며 그동안 이용자 수에서 1위였던 미국을 누름. 웹 브라우저 선구자인 넷츠케이프가 역사 속으로 사라짐.

2009년. 주요 일간지였던 시애틀 포스트 인텔리전서가 온라인 신문으로 개편. 구글은 인터넷 이용에 최적화한 무료 OS를 개발 중.

Q:인터넷의 현재 모습은 어떤가요?

A:시장조사업체인 인터넷세계통계(IWS)에 따르면 올해 8월을 기준으로 전세계 인터넷 이용자 수는 16억6900만명으로 전세계 인구의 24.7%에 달합니다. 불과 12년전 인구 100명당 인터넷 이용자 수가 2명에 불과했던 것이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특히 중국은 3억3800만명으로 인터넷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나라입니다.

이용자가 늘면서 인터넷은 하나의 거대한 산업을 만들었습니다. 각종 통계를 살펴보면 인터넷을 통한 경제의 변화를 제2의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것도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한 연구에 따르면 2008년 인터넷 상거래 규모는 6조8000억달러로 추정됩니다. 이는 전세계 GDP의 15%에 해당하는 막대한 비중입니다. 인터넷은 기존 산업과 뒤섞여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도 합니다. 지능형 전력망(스마트그리드), 텔레매틱스 같은 첨단 기술 산업부터 벌써 우리 생활에 자리잡은 인터넷TV(IPTV), 인터넷전화(VoIP) 등이 예입니다. 인터넷을 통해 수많은 것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경제가 더욱 촘촘하게 구성되고 있습니다.

Q:인터넷의 위기와 기회, 새로운 도전은?

A:초기 인터넷의 기틀을 잡은 이들은 제약없이 정보를 주고 받는 개방된 공간을 꿈꿨습니다. 웹을 만든 팀 버너스 리가 어떤 형태의 소유권이나 이용 허가를 요구하지 않고 이를 세상에 공개한 것만 봐도 초기 인터넷이 지향한 바를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월드와이드웹으로 상징되는 공간을 초월한 의사 전달, 유튜브·페이스북 같은 서비스가 가능할 수 있는 자산이 됐습니다. 클라인록 교수는 이를 “열린 접속을 허용하면서 인터넷 세상에 수천 개의 꽃이 폈다”고 회상했습니다.

하지만 불혹에 접어든 인터넷은 개방성을 위협받고, 각종 규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가 되고 있습니다. 넘쳐나는 스팸메일과 해커들의 공격에서 인터넷 공간을 지키기 위해 인터넷은 방화벽으로 둘러쌓인 폐쇄 공간이 됐습니다. 몇몇 국가에서는 정치적인 이유로 인터넷에 자유로이 떠다니는 정보를 차단하기도 하며, 사업자 간 경쟁은 서비스 플랫폼을 폐쇄적으로 변질시켰습니다. 불법 파일 및 음란물이 널리 유포되면서 이를 막으려는 규제도 거셉니다. AP는 이를 탄생 40주년을 맞은 인터넷이 ‘중년의 위기’를 겪고 있다고 표현했습니다.

많은 이들이 규제와 상업적 속박에서 자유로웠던 초기의 인터넷을 그리워합니다. 자유로운 인터넷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 지, 이용의 주체들이 나서 기회를 모색할 때 인터넷은 또다시 새로운 세상을 열어 줄 것입니다.

차윤주기자 chayj@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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