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경제의 중심축인 미국과 유로권은 글로벌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 툴로 IT인프라에 대한 공격적인 투자와 서비스 이용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유무선 초고속인터넷(브로드밴드) 인프라 확충을 통해 온오프라인 경제활동을 자극하는 한편, ‘그린(Green) IT’를 내건 차세대 에너지원 개발과 저탄소 경제 실현, 그리고 이를 통한 새로운 일자리 창출을 적극 모색하고 있다.
특히 백악관에 최고기술책임자(CTO)·최고정보책임자(CIO) 등을 신설, 새로운 형태의 IT 컨트롤타워 체계를 구축해 국가 차원의 IT정책 조율과 비용 효율화를 꾀하고 있는 미 오바마 정부의 시도가 어떤 성과를 가져올지에도 전 세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미국
글로벌 경기침체의 진원지인 미국은 ‘위기에서 변화로, 그리고 다시 기회로’를 슬로건을 내건 오바마 정부의 대규모(7870억달러) 경기부양책을 통해 경제 재건과 글로벌 리더십 강화를 꾀하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닷컴 붕괴에 이어 또 한 차례 한파를 맞은 미국 IT업계는 오바마 정부가 펼칠 ‘21세기판 디지털 뉴딜’ 사업에 큰 관심을 보이며 경제 회생의 견인차로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IT는 미국 역사상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숨은 공신으로 지난 대선에서 ‘롱테일 정치(longtail politics)’ ‘위키 정치(Wiki politics)’라는 신조어까지 탄생시켰다.
지난해 말 과학기술팀 인선을 단행하며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을 다시 과학기술 세계 1위 국가로 만들겠다. 과학과 혁신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포부를 밝혀 IT를 통한 과감한 변화와 혁신에 나설 것임을 시사했다.
오바마 정부가 추진 중인 IT인프라 분야 경기 부양책은 크게 △인터넷 접근성 제고를 위한 브로드밴드 확대 △의료·건강 △전력·에너지 등 3개 분야 투자를 통한 일자리 창출에 집중되고 있다. 이와 함께 정부의 모든 데이터센터를 3년 안에 그린환경에 맞는 센터로 전환하는 방안도 높게 점쳐져 미국내 그린IT 수요증가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오바마 취임 전 정권인수팀이 IBM·구글·MS 등 대표적인 IT업체들에 분석을 요청한 결과, 이들 3개 분야에 300억달러의 정부투자가 집행되면 95만개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정보 고속도로 개선사업’ 격으로 올해 72억달러가 투입되는 브로드밴드 확충 사업은 오바마가 대선 캠페인 시절부터 줄곧 강조해온 항목이다.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이 IBM과 함께 작성한 ‘IT인프라 투자의 일자리 창출 가능성’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네트워크 접근성이 취약한 지역의 인터넷 접속 속도를 높이기 위해 광대역망에 100억달러를 투자할 경우 한 해 49만8000개의 새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됐다.
이와 관련해 광대역망의 속도와 예산 투입 범위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오바마 정부와 의회가 광대역 인터넷망의 속도(1.5M∼50M bps)와 보조금 투입 지역을 어떻게 재정의하느냐에 따라 지역 통신·전화 사업자들의 희비가 엇갈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또 인터넷 낙후지역 서비스 사업자에 대한 추가 보조금 지급과 통신사 소득공제 확대 등의 정책지원이 기대되고 있다.
의료개혁과 맞물려 추진되는 ‘보건의료(헬스케어) 기록의 전자화’도 오바마 정부가 추진 중인 대형 IT사업중 하나가 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오바마는 오는 2014년까지 전 국민의 의료 정보를 디지털화해 의료비용과 검진효과를 극대화한다는 방침이다. 지난 2월 미 정부는 이 분야에 190억달러의 투자를 발표했으며 향후 10년간 750억∼1000억달러에 가까운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그린IT’ 테마와 관련해서도 미 정부는 태양광 등을 통한 신재생 에너지 개발, 전력 효율화를 위한 스마트 그리드 등에 주목하고 있다. 전체 경기부양 예산 중 그린에너지 관련 예산만 10.4%에 달한다. 이 밖에 첨단기술력 확보를 위한 해외 전문직 취업비자 확대, e러닝 활성화를 통한 교육기회 확산, 인터넷 망중립성, 디지털TV 전환 등도 오바마 정부의 주요 IT정책 이슈로 자리잡고 있다.
◇유럽
유럽연합(EU)은 올해 초부터 강력한 경기부양책을 잇따라 내놓는 한편, 각국별로 ‘디지털’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브로드밴드 및 무선 네트워크 확산을 위한 사업을 구체화하고 있다. 또 그린IT와 관련해 ‘에너지 고효율 빌딩(스마트 빌딩)’과 ‘그린카’ 프로젝트도 경제 회생의 핵심 엔진중 하나로 삼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 1월 올해 유로존의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보다 1.9% 줄어들며 크게 위축될 것이라는 경제전망 보고서를 내놨다. 당초 전년대비 0.1% 성장할 것으로 봤던 전망을 석 달 만에 내려잡은 것이다. 특히 유럽의 경제대국인 독일이 2003년(-0.2%), 프랑스가 1993년(-0.9%), 영국은 1991년(-1.4%) 이후 각각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면서 위기 극복을 위한 범유럽 차원의 공조와 개별국의 경기 부양책이 잇따라 추진됐다.
앞서 지난해 12월 27개국 EU 정상들은 역내 GDP의 1.5% 수준인 2000억유로(약 353조원) 규모의 경기부양책에 합의했다. 이와 함께 유럽 각국들도 GDP의 1.0∼1.4% 규모의 자체 부양책을 마련하고 인프라 투자확대를 비롯해 부가세 등 세율조정, 직업훈련 강화 및 기업의 감가상각제도 개선, 주거안정 및 자동차 산업 지원 등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노력을 반영하듯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지난달 발표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성장률은 1분기 ―2.4%에서 2분기 들어 ―0.3%로 다소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여전히 마이너스 성장세를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EU도 경기 회복을 위한 토대로 IT에 주목하고 내년까지 에너지와 브로드밴드 인프라에 총 50억유로를 투자하는 방안을 모색중이다. 지난해 11월 지식경제 및 저탄소 경제로의 전환 가속화를 목표로 수립된 ‘유럽경제회복계획(European Economic Recovery Plan)’에서 이 같은 노력이 확인된다.
EU는 브로드밴드의 확대가 오는 2015년까지 7만개 일자리를 창출, 경제위기에 더욱 취약한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를 위해 내년까지 10억유로를 투자, 유럽 GDP의 약 1.5% 규모의 기여도를 창출한다는 계획이다. 또 내년부터 차세대 4G 모바일 인터넷 확산을 위한 연구에 1800만유로(2500만달러)를 투자키로 했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영국은 ‘디지털 영국(Digital Britain)’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오는 2012년까지 전 가정에 브로드밴드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으며 디지털 전환을 위한 22개 실행계획도 수립했다.
프랑스는 통신분야 위상 강화와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목표로 한 ‘프랑스 디지털(Numerique) 2012’ 전략을 발표했다. 향후 3년간 7억5000만유로를 투입, 내년까지 유선 브로드밴드를, 그리고 2012년까지 모바일 브로드밴드를 중소도시에 보급하기로 했다. 아일랜드도 향후 10년간 IT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경제 구현을 통해 약 3만개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독일은 모바일 네트워크를 통한 부가가치 창출에 주목하고 지난 6월부터 중소기업·행정 부문의 모바일 확산 프로젝트 ‘SimoBIT’를 추진중이다. 이탈리아도 10억유로를 투입, 오는 2011년까지 99%의 브로드밴드 서비스 보급률을 실현한다는 계획이다.
EU는 또 최근 들어 지역간 휴대폰 로밍 통신요금 상한선을 낮추는 새 규제책을 발효시키는 등 유로권의 통신 서비스 통합과 활성화도 적극 모색하고 있다.
이정환기자 victo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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