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리포트]델 에스테, 사라져가는 `남미 최대 블랙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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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국 산업은 없이 단지 수입과 주변 나라로의 재수출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나라 파라과이. 이런 파라과이에 빼놓을 수 없는 상업 도시가 있다.

 바로 1954년부터 1988년까지 장기 집권했던 독일계 파라과이 대통령 알프레드 스트로에스네르가 만든 델 에스테다.

 1980년께부터 활성화됐던 델 에스테시(당시 이름은 스트로에스네르시)는 한때 남미의 블랙마켓을 주도하면서 파라과이 GDP의 60%까지 창출했다. 우정의 다리를 거쳐 이웃 나라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는 물론이고 타 대륙에서까지 매일 100만명에 이르는 상인과 관광객이 몰려들었던 도시였고, 홍콩과 마이애미에 이어 세계 3대 무역시장이라고까지 불렸다.

 ◇파라과이 IT 제품의 메카, 델 에스테=델 에스테시의 성장 배경에는 당시 대통령이었던 스트로에스네르의 전폭적인 지원과 비과세 지역이라는 특징이 있었다.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생산되는 모니터의 생산 원가가 150달러라면 브라질 내 판매가격은 250달러에 달한다. 각종 세금이 붙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라과이로 수출한다면 150달러보다 조금 비싼 가격에 판매하게 된다. 델 에스테에서는 ‘150+a’ 로 받은 물건에 자신의 이득을 붙여 ‘150+a+b’로 다시 브라질에 재판매하는 것이다. 델 에스테 무역상의 이득을 붙여서 팔아도 브라질 본토에서 구입하는 것보다 30∼50%나 저렴하다. 이것이 델 에스테가 성장하는 데 밑거름이 됐다.

 지금도 델 에스테는 파라과이에서 빼놓을 수 없는 상업 도시다. 온갖 짝퉁과 정품 의류들, 제화, 자동차, 장난감, 화장품, 향수, 시계, 가전제품, 전자 통신제품 그리고 심지어 마약과 불법무기까지 구할 수 있다.

 이러한 것들 가운데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IT 제품이다. 컴퓨터와 휴대폰, 최근 들어서는 MP3플레이어나 카메라까지. 델 에스테는 IT 제품을 사기 위해 주변나라에서 몰려들어온 관광객으로 오늘도 거리가 상당히 번잡하다.

 1990년대에는 높은 세금으로 고가가 돼버린 IT 부품을 델 에스테에서 구입하기 위해 몰려드는 상인과 관광객으로 성황을 누렸다. 이름을 밝히기 꺼리는 한 상인은 대략 3㎥에 이르는 자신의 가게를 손으로 가리키며 당시 이곳에서 하루에 1만달러씩을 벌었다고 이야기한다.

 ◇좌파 집권·불황으로 호황 ‘옛말’=하지만 애초부터 델 에스테 시장은 불안정한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었다. 자국 산업이 없는 까닭에 수입에만 의존해야 하는 경제 구조에다 남미의 한복판에 위치해 어쩔 수 없이 아르헨티나와 브라질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지정학적 구조까지.

 그래서 ‘아르헨티나 혹은 브라질이 기침만 하면 파라과이는 감기에 걸린다’는 말까지 생겼다. 최근 10년간의 아르헨티나 경제 파동으로 더 이상 아르헨티나의 눈치는 보지 않지만 여전히 브라질의 눈치는 살피지 않을 수 없다.

 이미 전 정권인 콜로라도 당의 집권 말기에 부가된 과세로 수세에 몰린 기업들이 이타이푸 댐의 외교적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한 번씩 국경을 통제하는 까닭에 브라질에서 바이어가 들어오지 않는데다 페르난도 루고 대통령 정부가 들어선 뒤로는 더욱 높아진 세금으로 상인들의 한숨소리가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불어닥친 국제 경제 불황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델 에스테 시장을 강타하고 있다. 브라질의 환율 변동이 커진 탓에 파라과이에서 구입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경제 파동 전에는 환차로 30% 정도의 이득을 취할 수 있었지만 헤알화가 달러 대비 45% 정도 절하됐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품목은 아직 델 에스테가 저렴하다. 하지만 브라질 상인들이 단지 몇 종류의 저렴한 상품을 구입하기 위해 굳이 국경이나 검문소를 거치는 위험을 무릅쓸 필요가 없는 것이다.

 ◇업종 다변화로 생존 몸부림=불안정한 요소는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의 경제 위기가 닥치기 전부터 장기간의 침체와 불황 여파로 구매자가 더 저렴한 가격의 제품만을 선호하게 되자 일류 메이커를 버리고 수많은 아류 메이커를 생산해서 유통시키는 방법으로 버티고 있었다. 그러나 좌파 정부가 델 에스테 상인들과 협상을 거부하며 일방적으로 관세를 상향 조정한 뒤로는 아류 메이커의 수입마저 여의치 않다.

 물론 현재도 시장을 주도하는 대기업에 의해 신제품과 첨단 제품들이 속속 선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물량 면에서는 예년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견해가 절대적이다. 심지어 일부 기업인은 델 에스테를 버리고 상파울루, 부에노스아이레스 혹은 다른 제3국의 도시로 철수 혹은 이전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일부 상인은 미련이 남아 있어서인지 업종 다변화로 생존을 시도하고 있다. IT 계통에 부과된 높은 세금과 달리 액세서리는 아직도 약한 과세가 적용되기 때문에 노트북 케이스, 가방과 같은 다른 종류의 물품을 취급하면서 생존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8월 현재 IT 매장에는 배낭이나 여행용 가방을 비롯한 노트북PC 케이스와 기타 액세서리를 걸어놓고 판매하는 곳이 속속 눈에 띈다.

 또 다른 상인들은 애초에 델 에스테 시가 의류 전문 시장이었던만큼 아직도 의류 쪽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고 업종 변화를 시도해 보기도 하지만 장래가 보이지 않는 시장 상황 때문에 주저하고 있다.

 2008년에 시작된 세계 경제 불황을 이제부터 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상인들. 게다가 브라질과의 환차로 현재 이곳에서 판매되는 메모리와 같은 컴퓨터 부품이나 팬 드라이브, 넷북, 휴대폰과 같은 IT 제품부터 TV와 같은 가전 등은 오히려 브라질이 더 싸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현재 이 지역에서 그나마 조금이라도 경쟁력 있다고 여겨지는 것은 ‘MP7’ 한 종류뿐일 것이라고 무역업에 종사하는 레오나르도씨(34)는 말한다. 레오나르도씨는 “TV와 몇 가지 가전은 자신도 브라질에서 할부로 구입했다”고 말했다.

 현재 노트북과 휴대폰 등 IT 업종의 수입과 판매에 종사하는 교포 모씨(42)는 현재의 위기감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다.

 “이전에는 죽기 아니면 살기로 물건을 팔았습니다. 지금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로 물건을 팔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정말 팔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으로 박리로라도 팔았지만 지금은 문을 열어놓아도 팔리지 않는 사업을 하면서 제 살을 깎아 먹고 있다고 한숨을 쉰다. 델 에스테의 IT 업종 위로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가 하루 이틀 사이에 걷히지는 않을 듯하다.

 <포스 두 이구아수(브라질)=박소현 세계와 브라질 블로거> infoiguassu@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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