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R&D)에 왕도란 없다. 꾸준한 투자로 기술력을 축적하다보면 성과가 자연스레 따라오게 마련이다. 그게 과학기술이다.”
출연연 연구원들이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의 ‘성과 조급증’을 질타하며 내놓는 목소리는 한결같다. 한번 투자에 완벽한 성과를 요구하는 풍토 때문에 연구원들은 늘 불안하다. 투자 규모면에서도 우리나라는 국내총생산(GDP) 기준으로 미국의 10분의 1 수준에 불과한데도 동일하거나 앞선 성과를 요구한다.
기술 개발과정에서의 시행착오는 미국이나 러시아를 포함해 우리보다 앞서 가고 있는 인도나 중국, 브라질 등의 우주 기술 개발 사례를 보더라도 다르지 않다.
우주 강국 미국은 1957년 첫 위성 발사체 뱅가드가 발사 2초 만에 폭발하는 사고를 겪었다. 1979년엔 지구로 귀환하던 콜롬비아호가 폭발했고, 1986년엔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하는 고통을 겪었다. 그런데도 미국은 2007년 우주개발에만 176억5000만달러의 예산을 쏟아 부었다.
일본도 ‘쓴맛’을 봤다. 지난 1975년 미국의 도움을 받아 130㎏급 위성을 탑재할 수 있는 N1 로켓을 발사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 1994년 2000㎏급 탑재체까지 실어 나를 수 있는 발사체 H2를 국산화했다. 하지만 H2 6호는 두 번이나 실패했다. 개선된 모델인 H2A는 발사를 앞둔 시점에서 엔진배관 균열 및 엔진 불량으로 발사가 1년간 연기되기도 했다. 2003년엔 보조로켓이 폭발하며 2조원의 손실을 입는 등 대가를 톡톡히 치렀다. 일본은 시행착오를 거쳐 2007년 달 탐사선 ‘가구야’를 우주로 보냈다.
러시아도 2002년 소유스 로켓이 연료펌프 시스템 이상으로 발사 29초 만에 폭발했다. 영국과 프랑스, 독일이 각각 1, 2, 3단 엔진을 만든 다국적 로켓 유로파는 1968년부터 1971년까지 11번의 발사 중 7번을 실패했다.
신흥 우주강국인 중국도 초창기 대륙간탄도미사일을 개량해 만든 3단 로켓이 발사 69초 후 폭발했다. 중국은 현재 30억달러 가량의 예산을 우주부문에 투입하고 있다. 브라질도 1997년과 1999년 연속으로 발사 실패를 경험했고, 2003년엔 액체연료 누출에 의한 로켓 폭발로 과학기술자 21명을 잃는 대형사고를 겪었다.
우주개발에 있어 시행착오와 실수, 실패는 성공으로 가기 위한 ‘보물지도’다. 원인을 규명하다 보면 자연스레 최첨단 노하우가 저절로 쌓이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우주개발 예산은 3억달러 규모로 GDP의 0.03% 수준이다. 미국의 0.29%, 일본의 0.06%, 프랑스의 0.10%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국내외 전문가들은 충실한 투자만 뒤따른다면 우리나라의 일류급 조선기술과 정밀기계, 중화학, 군수산업, 전자기술 수준으로 볼 때 우주발사체 자립이 멀지 않다고 보고 있다. 이미 나로호 발사과정에서 우리나라는 수많은 분야에 걸친 기술 자립에 성공했다.
권세진 KAIST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우주항공 산업은 최첨단 기술이 집약된 종합 과학이기 때문에 실패와 성공의 희비는 불가피하다”며 “정부와 산업계가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대규모 투자를 꾸준히 진행해야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전=박희범기자 hbpark@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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