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라인] 노변정담(爐邊情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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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3년 3월 4일 미국의 32대 대통령에 취임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는 취임 후 8일 만에 라디오를 통해 뉴딜정책에 대한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난롯가에 대통령과 국민이 둘러앉아 국정현안과 새 정책에 대해 친근하게 직접 대화를 나눈다 해서 프로그램 명칭도 ‘노변정담(firesides chats, 爐邊情談)’으로 정했다. 노변정담은 비정기적으로 수개월간 진행됐고 국민의 호응도 컸다. 자신에게 적대적이던 언론과 의회를 극복하는 효과도 제공했다. 타임지는 그해 10월 초 여섯 번째 노변정담 소식을 전하며 “4개월 만에 라디오 전파를 탄 노변정담이 국민의 차가운 가슴을 따뜻하게 해줬다”고 평하기도 했다.

 루스벨트의 노변정담은 7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학문적으로 흔히 인용된다. 매스미디어의 영향력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경험론적 확산연구의 중요한 사례가 되기도 하고, 대인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성공적 사례로 인용되기도 한다.

 정부에 대한 국민의 반정서가 극에 달했던 대공황 시절 노변정담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내용도 내용이지만 전달하는 방식이 정확했기 때문이다. 루스벨트가 선택한 매체는 라디오다. 당시 라디오의 영향력은 컸다. 국경을 넘나들며 세상사를 전하는 사실상 유일한 매체였다. 신문은 매체 특성상 지역적 한계와 문맹을 극복하기에 한계가 있었고, 갓 보급된 TV는 일부 특정계층만이 소유할 수 있었다. 이런 이유로 국민은 친구처럼 가까워진 라디오로 저녁시간 대통령이 전하는 난국타개책에 귀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라디오는 이후 카터, 레이건 등 미국의 다른 대통령에게도 국민과의 소통을 돕는 주요 매체로 활용됐다.

 매체를 이용한 정책홍보는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들어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다만 시쳇말로 약발은 70년 전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매체가 다양화됐을 뿐만 아니라 대통령을 대하는 국민과 언론의 의식도 예전같지 않다.

 지난 22일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보험 개혁안에 대한 국민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TV 기자회견을 했다. 라디오의 영향력이 예전 같지 않은 탓에 전달매체로는 TV가 낙점됐다. 회견 전 백악관 트위터를 통해 오후 9시 프라임타임에 TV에서 만나자고 했지만 실제 기자 회견은 한 시간 앞당겨진 8시에 시작됐다. 주요 방송사들이 황금시간대를 내주지 않아서였다. 폭스TV는 “대통령 기자회견은 케이블채널 방송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아예 방송조차 하지 않았다.

 여기엔 오바마가 빈번하게 기자회견을 자청한 점도 방송사의 무관심 유발요인으로 작용한다. 오바마의 기자회견은 이번이 네 번째다. 재임기간이 6개월밖에 안 됐지만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재임 8년간 한 프라임타임 기자회견 수와 같다.

 오늘날 같은 다채널 다매체 시대에 노변정담과 같은 효과나 영향력을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더불어 그 횟수까지 잦다면 약발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명박 대통령도 노변정담을 벤치마킹한 라디오 연설을 지난해 10월 13일 시작했다. 2주에 한 번씩 월요일 아침 7시 44분부터 약 10분간 KBS 1 라디오 전파를 탄다. 8개월째다. 과연 우리 대통령의 노변정담은 얼마나 효과를 내고 있을까. 궁금하다.

최정훈 국제부 차장 jhchoi@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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