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초 한국인 남자의 게놈 염기서열을 높은 정밀도로 분석한 논문이 세계 최고 권위의 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돼 세계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이 논문은 서정선 서울대 의대 교수(유전체의학연구소장)팀이 발표한 것으로, 우리나라가 의학 분야에서 발표한 첫 네이처 논문이다.
서 교수는 “영화를 보면 블록버스터도 있고 저예산 영화도 있는데, 이번 연구는 블록버스터 대작을 한 것”이라며 “한 사람의 게놈 염기서열을 모두 분석했다는 것은 그 나라의 기술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사람의 유전자 정보를 분석한 것이 어떤 의미일까.
서 교수는 “이른바 게놈(유전체)은 미래를 위한 인프라를 갖추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인류에게 남은 비즈니스는 헬스케어와 엔터테인먼트”라며 “의식주가 해결되면 즐거운 것을 찾고, 고통에서 벗어나 무병장수를 꿈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노령인구가 증가하고, 경제적 여유를 갖추면서 건강을 향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 헬스케어 산업의 근간이 되는 것이 게놈이란 설명이다. 그는 미국 등 선진국이 헬스케어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게놈 분야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등 게놈전쟁이 시작됐다고 표현했다.
서 교수는 “현재 기술개발 속도를 보면 3∼5년 사이에 우리도 기술개발을 끝내야 한다”며 “만약 우리나라가 게놈 기술을 갖추지 못하면 다국적 제약기업에서 기술과 장비를 사서 써야 하는 상황이 올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정부와 대기업들도 게놈 분야에 관심을 갖고, 지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서 교수가 구상하고 있는 다음 프로젝트는 한국인이 속한 북방계 아시아인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DB)를 갖추는 것이다. 우선 한국인을 대표하는 기업인, 운동선수 중 게놈 분석에 동의한 20명을 선정해 분석할 계획이다. 20명을 분석한 뒤에는 100명까지 분석해서 개인별 맞춤의학을 위한 DB를 강화해 나간다는 생각이다. 이를 통해 한국을 미래 아시아인을 위한 맞춤형 의학허브로 육성하겠다는 포부다.
그는 “20명을 분석할 때 1인당 3억원의 비용이 들 것”으로 예상하며 “대기업 등에서 지원받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상징성이 있는 사람들을 분석하는만큼 지원기업의 홍보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개인별 맞춤의학이라고 하지만, 1명을 분석하는 데 드는 비용이 3억원이면 일반인은 꿈도 꾸지 못할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서 교수는 머지않아 모든 사람이 맞춤의학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확신했다.
서 교수는 “앞으로 3∼5년 안에 1000달러 이내에 게놈 분석을 할 수 있는 시대가 온다”며 “이게 발전하면 암 관련 유전자 테스트에 10만원, 당뇨 관련 유전자 테스트에 5만원 하는 식의 맞춤의학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시대를 앞당기기 위해 지금부터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며 “교육과학기술부, 보건복지부, 지식경제부가 각각 지원하는 것을 효율적으로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건호기자 wingh1@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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