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눈은 참으로 소중하고도 복잡한 장기다. 인간은 명암과 색깔을 지구상의 그 어떤 기계보다도 자세히 구별할 수 있는데 이는 망막 안의 색소층에 색체를 감지하는 대략 700만개의 원추세포와 명암을 감지하는 1억3000만개 정도의 간상세포 덕택이다. 이 세포들이 감지한 이미지는 광학 신경을 거쳐 감각중계기관인 시상으로 보내지고 이 신호의 일부는 또 상위 중추기관인 후두엽으로 보내진다. 게다가 인간은 눈으로만 의사결정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특수감각, 체성감각, 그리고 내부감각에서 감지한 이미지를 100조개에 이르는 뉴런과 그 이상의 시냅스들이 활용하는 것이다. 결국 인간은 총 1억3700만화소의 고성능 디지털카메라 2대를 얼굴에 부착하고 이를 세계 최고의 슈퍼컴퓨터로 조작하는 셈이다. 아무리 의학과 과학이 발전한다 해도 카메라 같은 기계로 눈을 흉내내는 건 요원한 일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근 인간의 눈에 도전하는 나노기술이 개발됐다는 희소식이 들린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샌디아 연구소에서 세계 최초로 가시광선의 전체 스펙트럼을 감지할 수 있는 탄소나노튜브(carbon-nanotube devices)를 개발했다고 한다. 이전엔 극자외선 등 빛의 특정 파장만을 감지하는 탄소나노튜브만이 있었다.
이 탄소나노튜브는 빛을 전기로 변환하는 전자결합소자(CCD)를 사용하는 디지털 카메라의 방식이 아니라 인간의 망막 원리 그대로 작동한다고 한다. 탄소나노튜브를 빨강·파랑·녹색 세 가지 빛의 특정 파장에 따라 모양이 변화하는 세 가지 층의 분자들로 코팅하고 분자층의 색 변화와 탄소나노튜브의 전기전도성을 활용해 분자 수준에서 특정 색을 감지하는 것이다.
아직 초기단계임에는 분명하지만 이 기술이 갖는 가능성은 크다. 이런 나노튜브 광검출기들은 기존 광검츨기 칩들보다 기본적으로 훨씬 고해상도인데다 크기도 작다. 무엇보다 이런 기술을 활용한 미래의 단말기들은 그야말로 매우 작은 빛의 수준까지 잡아낼 수 있다. 맹인이나 망막이 손상된 사람을 위한 보다 효율적인 인공망막을 만들 수 있고 태양빛의 43%를 차지하는 가시광선을 100% 활용하는 방법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나노기술 그 자체를 보면 가능성은 더욱 무궁무진하다. 인간은 작은 것을 보기 시작하면서 진화해왔다. 기술을 개발해 이전에는 보지 못한 분자를 보기 시작하고 이를 이용해 더 나은 기술을 만들었다. 분자는 원자로, 원자는 양자에서 나노 수준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노 기술이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정확하게 내다보는 건 쉽지 않다. 하지만 변화가 있을 것이고 그 변화가 우리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나노기술로 완벽하게 인간의 눈을 모방한 눈으로 미래를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상상을 하는 건 나뿐일까.
차원용 아스팩미래기술경영연구소장 wycha@StudyBusiness.c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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