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의 휴업이 오래 간다. 벌써 6월 임시국회가 열렸어야 할 판인데 ‘오리무중’이다. 이대로 가면 임시국회를 건너뛰고 9월 정기국회로 직행할 판이다. 일 하지 않고 세비만 축내는 정치권의 행태가 새삼스럽지 않지만, 개점도 하지 않는 국회에 국민의 분노만 치솟는다. 겉으론 여야간 대립이지만, 본질적인 책임은 청와대와 여당에 있다. 여당은 인적 쇄신을 놓고 친이 직계와 소장파 등으로 구성된 쇄신파, 친박 계열이 무차별적으로 대립한다. 집권 이후 끊임없이 이어진 당내 헤게모니 싸움이 그치기는 커녕 더욱 고조됐다. 진짜 문제는 청와대에 있다. 당내 갈등을 조정할 의지도 없어 보인다. 또 여당의 의견을 경청하겠다고 하면서도 국면전환용 인적쇄신엔 부정적이다. 추모 정국 이전과 달라진 게 없다.
대통령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정치를 해야 하는 자리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은 정치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여의도 정치와 늘 거리를 둬온 인식의 연장선인지, 대통령의 정치 행위를 적극적으로 행사하려다 역풍을 맡은 전임 대통령의 전례를 밟지 않겠다는 것인지, 이유를 모르겠다. 그렇지만, 정치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이 정치를 하지 않는 것엔 분명 문제가 있다. 일종의 직무 유기다.
요즘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설득 리더쉽’이 화제다. 그는 자국 내에선 국세를 쏟아붓는 경기 부양안을 반대하는 의회를 설득시켰다. 국제적으론 미국에 가장 적대적인 이슬람권까지 설득시켰다. 지난 4일 카이로 대학 연설이 압권이다. 이슬람 세계의 입장을 공감하는 그만의 화법으로 이슬람 세계로부터 두루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와 같은 이슬람 강경세력도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는 단서를 달았지만 “구체적인 변화를 보여주는 연설”이라고 평가했다. 솔직함, 감성 호소 등 오바바 설득법의 힘은 다양하지만, 상대방을 잘 이해하고 있다는 믿음을 주는 게 가장 큰 힘이다. 이 힘은 그를 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했다.
반면에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추모 정국 직후 첫 라디오 연설이라는, 국민을 설득할 좋은 기회를 놓쳤다. 대국민 사과 여부는 다른 차원의 얘기라 해도 사태를 어떻게 보며, 앞으로 어떻게 정국을 안정시킬 것인지 대통령이 호소력 있게 전달했다면 이후 정국은 지금과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정치는 정치적 이해 관계의 대립 또는 차이를 조정하는 일련의 행위다. 외교와 닮았다. 북핵 사태로 바쁜 캐슬린 스티븐슨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 주말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세미나에서 외교를 ‘새로운 선택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말했다. 우리 정치에 꼭 필요한 기술이다. 그러나 우리 정치엔 ‘있는 선택마저 없애는 기술’만 있다. 이상득 의원이 최근 ‘정치 2선 후퇴 선언’을 했다. 정치인이 당분간 정치에 손을 떼겠다고 하는 게 ‘정치’가 되는 이상한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임시국회가 열릴지도 의문스럽지만, 열린다 해도 제대로 갈 지 모르겠다. 지금 상황으론 조정은커녕 대립만 더 거세어질 판이다. 가뜩이나 미디어법 등 여야가 극한 대립하는 법안을 처리하는 임시국회다. 국정을 안정화하기 위해 이 대통령이 한나라당 의원 전체 만찬이든 라디오연설이든 ‘새로운 선택’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길 바랄 따름이다.
신화수 <취재담당 부국장>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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