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의 왕’으로 불리는 폴리이미드(Polyimide)의 역사는 깊다.
지난 1956년 미국 듀폰에서 처음 개발된 이후 우주·항공, 전기·전자, 자동차 및 정밀기기 등 다양한 산업 분야에 폭넓게 이용돼 왔다. 금속보다 훨씬 가벼우면서도 쉽게 깨지지 않는데다 불에 타지 않고, 전기적 절연성이 뛰어난 소재의 특성 때문이다. 최근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산업의 핵심 소재로 큰 각광을 받고 있다. 역사는 오래됐지만, 새로운 물질로 평가받는 이유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화학연구원이 10여년 전부터 폴리이미드 원천 기술 개발에 뛰어들어 연구성과물을 배출, 기술 사업화의 기반을 다졌다. 대표적인 연구 성과물로 수직배향형 액정배향막을 꼽을 수 있다. 폴리이미드를 소재로 한 액정배향막은 액정표시장치(LCD)패널 안에서 액정이 한쪽 방향으로 균일하게 배열되도록 도와주는 핵심 재료다. 액정 디스플레이의 품질을 좌우할 정도로 역할이 크다.
화학연은 세계적으로 액정배향막을 독점 공급해온 일본의 아성에 도전,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이 기술은 제일모직에 기술이전돼 상용화됐고, 삼성전자가 연내 LCD 모니터 등 대형 화면에 이 소재를 적용할 계획이다. 화학연이 기술개발에 뛰어든지 무려 14년만에 빛을 보는 셈이다.
이미혜 화학연 화학소재연구단장은 “폴리이미드와 같은 소재는 상용화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다 투자도 대규모로 이뤄져야 하는 만큼 대기업이 아니면 실질적으로 상용화를 할 수 없다”며 기술 사업화에 따른 고충을 털어놨다. 국내 최종 사용 업체들의 국산화 의지가 약한 것도 국내 소재 산업 발전의 걸림돌이다. 이 단장은 “기업들이 현재 생산중인 제품의 품질에 문제가 될까봐 국산화된 소재의 테스트를 사실상 꺼려한다”며 “하지만 세계 일류의 소재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돈보다 기술 축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화학연은 그간 축적된 R&D 기술을 기반으로 최근 차세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용 폴리이미드 유기절연체 개발에 집중하고 있다. 전기절연성이 우수한 폴리머박막을 개발하는 목표다. 2002년부터 시작한 이 사업은 10년 후의 시장을 미리 내다보고 출발했다. 삼성전자, LG디스플레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회로 관련 대학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다.
화학연은 이 소재가 개발될 경우 기존 고가의 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차세대 전자제품의 생산이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응용 분야도 e페이퍼, RFID 등 다양하게 활용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미혜 단장은 “소재는 산업과 함께 가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 국산화된 소재를 테스트하고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적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대전=신선미기자 sm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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