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상품 생산과 판매의 분리
상품 유형 따라 판매채널 특화 현상 가속화
단순상품은 온라인, 복잡상품은 전문채널 통해 판매할 듯
기고/김찬수 투이컨설팅 IS팀장(이사)
최근 금융업계에서는 ‘독립적으로 보험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보험전문회사’ ‘모든 종류의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금융상품판매전문회사’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전통적으로 상품의 제조와 판매가 분리된 제조업과 달리 금융 분야에서 ‘판매전문회사’는 아직 우리에게 생소한 개념일 수 있다. 하지만 금융선진국에서는 이미 다양한 형태의 판매전문회사가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고, 현재도 초기 형태의 판매회사(독립대리점 GA)들이 꾸준히 매출이나 조직 규모를 키워가고 있다.
즉 금융 산업에서도 생산과 판매의 분리가 본격화되고 있는 것이다. 금융 IT, 나아가 IT 분야 종사자 모두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파악하고 그러한 징후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상품 제조와 판매의 분리라는 흐름에 어떻게 대처하고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금융회사 가운데서도 특히 보험 분야를 중심으로 생각해보자. 금융상품의 생산과 판매 분리 징후는 △법·제도 변화 △판매채널 변화 △상품 구매패턴 변화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상품유형 따라 판매채널 특화 가속화=우리나라 금융산업도 금융상품의 판매만 전담하는 판매전문회사들이 설립되고 나아가 투자자문 서비스가 활성화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고 있다. 보험업법은 보험회사의 투자자문업이나 일임업의 겸영을 허용하고 독립적으로 보험 계약의 체결을 중개하는 보험판매 전문회사의 신설이 허용되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금융상품판매법은 2010년 모든 종류의 금융상품 판매가 가능한 금융상품판매 전문업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 밖에 펀드판매 선진화를 위해 일반법인의 펀드 판매를 허용하고 펀드 판매 관련 투자자문서비스를 활성화하는 방안도 금융감독위원회에 의해 추진되고 있다.
이와 함께 금융, 특히 보험시장은 과거 대면채널 일변도의 판매 방식에서 벗어나 점차 다양한 전문 판매채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보험사들은 지난 2003년 방카슈랑스, 홈쇼핑 등 신채널 확보와 2008년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의 설계사 교차모집 등을 통해 판매 경쟁력을 강화했다. 이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GA 활성화다. GA는 생명보험과 손해보험을 아우르며 여러 보험상품을 비교·분석해 고객에게 가장 적합한 상품을 판매한다. 특정 회사에 전속돼 그 회사의 보험상품만 판매하는 방식과 비교할 때 고객 측에서는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이다.
상품 구매패턴에서도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고객은 이미 새로운 금융상품 판매 방식에 적응하고 있다. 이에 따라 통합 금융환경에서 다양한 상품들을 비교·분석하고 자신에게 최적의 상품을 추천해주는 종합적인 컨설팅 능력을 판매 채널에 요구하는 추세다. 특정 회사의 충성도보다는 구매 요구에 따라 그때그때 적합한 채널 및 금융회사를 다양하게 선택하는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이런 변화들은 미국, 영국 등에서 이미 구체화된 상태다. 이들 국가의 금융상품 판매채널 구조는 전속채널보다 GA, 자문서비스 중심의 IFA 등 독립채널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미국·영국·일본의 생명·손해보험 채널의 변화를 보면 전속채널의 약화, 전문적인 독립법인의 성장, 자문서비스 활성화, 직접판매 시장의 성장 등을 볼 수 있다.
◇복합상품 취급하는 금융판매 전문회사 출현=국내외 금융시장의 변화를 정리하면 △다양한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금융판매 전문회사의 출현 △단순 상품은 온라인에서 다양한 금융회사의 상품을 비교하면서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화 △복잡한 상품들 즉, 종신형 및 투자형 상품들은 전문적이고 독립적인 자문서비스를 받아 구매하는 방식으로 변화하고 있다.
금융상품의 제조와 판매가 분리되면서 영역별 전문화 현상이 강화되고 있다. 판매채널에서는 독립판매회사, 대형 GA 등 공급자 시장의 영향력과 비중이 커지면서 금융백화점 형식의 금융상품 전문판매업 등장이 가장 두드러진 변화다. 금융상품 전문판매업이란 모든 금융업종의 다양한 상품을 한 곳의 전문판매기관을 통해 구입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의 판매채널로 금융상품의 통합적인 원스톱 종합자문 컨설팅이 가능하다.
이들은 금융상품 전문 지식을 기반으로 상품 판매와 재무 상담을 연계, 고객 맞춤형·차별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주력한다. 대면상담 위주의 전통 채널에서는 다른 회사 비슷한 상품과의 가격 비교 등이 어려웠지만 금융상품 전문판매업은 소비자의 직접 비교구매가 가능하다. 이런 점에서 보다 개방적인 형태의 금융백화점이라고 볼 수 있다.
향후 우리나라에서 금융상품 전문판매업의 모델이 어떻게 발전할 것인지 판매형식에 따른 사업영역별로 분석하면 완전독립형, 대형AG, 판매전문회사 등의 형태가 나온다. 완전 독립형은 모든 금융업종의 상품을 취급하며 고객에 전문적인 자문을 제공하는 데 중점을 둔 ‘금융 주치의’ 성격으로 영국의 독립금융어드바이저리(IFA)가 대표적이다. 대형 GA는 기존 GA들이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결합·통합해 네트워크화, 프랜차이즈화한 형태다. 판매전문회사는 금융상품판매법, 보험업법에 의해 기존 GA에 비해 확장된 개념의 판매전문회사다.
국내 보험회사들은 판매채널의 이러한 변화에 대비, 각자의 역량과 위상에 맞춰 전략을 준비하고 실행해야 한다. 고객은 편리성을 추구하고 가격에 민감하지만 복잡하고 자문이 필요한 상품일 때에는 상담을 마다하지 않는 이중적 성향을 가지고 있다. 상품 요구에 따라 선택하는 판매채널과 회사도 다르다.
통합상품처럼 전문적이고 복잡한 상품(complex product)과 자동차 보험이나 암 보험처럼 단순상품(simple product)으로 상품이 구분되고, 상품의 특성이나 타깃에 따라 판매채널이 구별되는 추세다. 이런 근본적인 변화를 고려할 때, 대형 금융사와 중소형 금융사의 대응 시나리오와 전략 초점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중소형 금융사, 판매 및 컨설팅 전문채널 적극 활용=대형 금융사는 전통적인 대면채널을 중심으로 전문화된 컨설팅을 제공, 복잡한 상품의 생산 및 판매가 지속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중소형 금융사는 단순상품은 판매 전문채널을 활용하고 복잡상품은 컨설팅 전문채널을 활용할 가능성이 높다.
대형 금융사는 전통채널 조직을 갖춘데다 컨설팅 능력도 갖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전문성을 강화해 복잡한 상품은 직접 판매하고, 단순 상품은 판매 전문회사에 일임하는 형태로 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대형 금융사도 계속 설계사를 통해 단순상품을 판매하고, IFA 같은 자문 중심의 전문채널을 활용해 복잡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형사와 중소형사의 전략 초점은 점점 뚜렷이 구별될 가능성이 크다. 중소형 금융사는 대형사만큼 거대한 전통채널 조직을 갖추기 어렵다. 이런 점에서 전문 컨설팅 역량이 필요한 복잡 상품은 재정설계 전문채널을 활용하고, 단순상품은 금융백화점이나 온라인몰 같은 판매전문회사를 활용하는 것이 회사의 역량에 맞춰 운영효율을 극대화할 수 있는 방법이다. 금융회사의 역량 및 주요 판매채널 비중에 적합한 포지셔닝 전략은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유형은 공급자 중심의 전통 판매채널이 강화된 형태로 현재의 시장과 비슷해 보이지만 고소득자 및 충성도가 높은 고객층의 특화시장 선점 전략을 통한 개인 보험상품 판매에 주력한다는 점이 차별성이다. 미국의 노스웨스턴뮤추얼이 대표적이다. 이 회사는 다른 보험사와 달리 전속 영업조직을 점점 늘리고 있는 것이 특이하다. 잘 짜인 인턴십 프로그램을 이용해 젊고 유능한 영업조직을 채택하고 교육 훈련을 통해 고소득층을 대상으로 상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도록 해 양질의 계약자를 획득하는 전략을 구사한다.
두 번째 유형은 판매자 중심의 공급자 시장이 보다 강화된 유형이다. 전통 판매조직은 정예화 및 고능률화로 전문성을 강화하고, 공급자 시장 조직은 대형화해 판매기회 및 경쟁력을 높이는 전략을 동시에 추진한다.
세 번째 유형은 제품의 생산과 판매가 100% 분리된 형태다. 상품만 만드는 생산전문회사 타입으로 케이블TV의 광고에서 자주 보는, 별도의 계약심사(underwriting) 없이도 손쉬운 가입이 가능한 상품을 주로 판매하는 보험사들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서 전통채널보다는 공급자 시장 채널이 강화된 두 번째 전략 타입의 발전 가능성이 더 높다. 전통채널은 고객에게 맞춤화되고 특화된 상품을 제공하며 판매조직은 정예화, 슬림화할 것으로 보인다. 능률을 높이기 위해 재정설계 자문 및 금융 주치의 성격의 전문 인력을 강화하고, 완전판매로 고객의 신뢰도를 높이는 작업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 반면에 판매자 중심의 공급자 시장 채널은 최대한 다양한 판매전문회사와 제휴해 판매기회 및 경쟁력을 강화시켜 채널 장악력을 높이고, 비즈니스 프로세스 아웃소싱 형태로 운영비용을 효율화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판매채널 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환경적인 요인으로 고객과 상품의 변화, 금융회사의 역량 및 주요 판매채널 전략 등을 종합해서 고려해야 한다. 향후 전통채널은 능률을 극대화한 조직으로 슬림화하고, 판매자 중심의 공급자 시장 채널은 대형화해 판매기회 및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두 번째 유형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cskim@2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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