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킹 등으로 금융사고가 발생시 은행이 사실상 전액 책임지는 것을 골자로 한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은행들이 크게 반발하고있다.
법 개정시 악용 소지가 있고, 무엇보다 세계 최고 수준인 인터넷뱅킹 서비스 활성화에 심각한 저해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다. 은행권은 국회를 설득해서라도 법 통과를 막겠다는 입장이어서 충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2일 관련 금융당국 및 은행권에 따르면 17개 은행은 지난주 은행연합회에서 회의를 갖고 금융위원회가 추진중인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에 대해 반대의 뜻을 명확히 했다. 특히 ‘전자금융거래법 일부 개정법률안 입법예고에 대한 은행권 의견서’를 은행연합회장명으로 제출, 단체행동에 나섰다.
비공개 의견서에는 은행이 ‘해킹 등 사고에 대해 무과실책임을 지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담았으며, 그에 대한 4∼5가지 사유를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문제가 되는 부분은 해킹 또는 자금이체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고의과실 입증을 못하면 은행이 책임을 져야하는 규정으로 은행은 수사권이 없어 고의과실을 입증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악의적으로 친구끼리 공모해 자금을 이체하고 사고로 신고하면 금융기관은 과실도 없는데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그러면 은행돈 먹기 쉽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이는 은행들이 인터넷뱅킹을 접거나 또는 보험료를 대폭 올려야 하는 상황이 발생해 결국 선량한 고객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개정안이 금융기관에 일방적으로 책임을 떠넘기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임종인 고려대 정보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은행에 무과실책임원칙을 적용하면 도덕적 해이가 발생해 개인정보를 무책임하게 방치할 수 있다”며 “고의과실을 입증하라지만 은행은 수사권이 없고 또한 사이버수사대에 의뢰해도 해결은 쉽지 않다”고 단정했다.
임 교수는 이어 “지금 개정안은 고객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인 만큼 정보통신망법(정보통신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개정 등을 통해 분쟁조정위원회에 조사권을 부여하는 등의 방식으로 해결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은행권에서는 의견서가 반영되지 않을 경우 국회를 통해서라도 개정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은행연합회 한 관계자는 “개정안은 과실도 없으면서 책임을 지라는 것으로 고객은 약자고 금융기관은 강자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나왔다”며 “악용사례를 막기 위해서는 정부가 안되면 국회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입법예고한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에서 ‘전자금융업 관리·감독 및 전자금융이용자 보호를 위해 해킹·추심이체 등에 대해 전자금융이용자의 고의·과실을 입증할 수 없는 경우 전자금융업자가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개정안은 이달중 규제개혁위원회와 법제처 심사를 거쳐 내달 국무회의를 거쳐 국회에 제출될 예정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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