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포트] 일본가전 틈새시장의 주인

 KOTRA 김현태 후쿠오카 KBC 센터장

 

 일본 시장은 철옹성 같기로 유명하다. 소비재 시장은 특히 심하다. 다른 어떤 나라보다도 자국산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가전제품 시장은 일본산의 수준이 너무 높아 해외 제품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다. 세계에서 품질을 인정받고 있는 삼성전자도 일본 시장에서 철수했을 정도다.

 그러나 일본 가전 시장에 틈새가 생기고 있다. 지난해부터 일본 전자 업계가 에너지 절약, 친환경 제품 등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과 생산에 집중하면서 소형 범용가전 시장에서 틈새가 생긴 것이다. 여기에 엔고까지 겹치면서 그 틈새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일본 전자 업계의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생겨난 틈새를 놓치지 않고 선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중국의 하이얼이다. 2002년 일본에 진출한 하이얼은 지난해 12월 매출이 76억엔으로 전기 대비 38%나 늘었다. 소형 냉장고와 세탁기를 일본 제품의 반도 안 되는 가격에 내놓고 있는데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다. 취업·대입 등으로 혼자 살게 된 사람들이 저렴하면서도 성능은 크게 나쁘지 않은 하이얼 제품에 눈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세탁기·냉장고 구입에서 절약한 돈으로 컴퓨터와 휴대폰을 구입하고 있다.

 하이얼의 일본 진출이 처음부터 쉬웠던 것은 아니다. 소형가전 부문에서 세계적인 점유율을 가지고 있는 하이얼이지만 일본 시장은 녹록지 않았다. 이에 일본 시장에 맞게 디자인과 구조를 바꿨다. 또 소비자로부터 신뢰를 얻고자 애프터 서비스는 산요전기와 제휴를 맺었다. 이 덕분에 슈퍼와 홈센터 등에만 납품하던 제품이 대형 가전 양판점으로 들어가게 됐다. 또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프로야구 팀인 도후쿠 라쿠텐과 스폰서 계약까지 맺었다.

 일본의 중견기업, 유통기업들도 소형가전 시장에 생긴 틈새를 파고들고 있다. 전자레인지 부문에서 트윈버드공업과 가쿠타무선전기의 판매량이 최근 각각 2배, 6배씩 늘었다. 일본 전자레인지 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던 파나소닉과 샤프의 고부가가치 전략으로 가격이 1만엔 이상으로 오르자, 7000∼8000엔 정도에 살 수 있는 두 기업의 제품이 팔리고 있는 것이다.

 후쿠오카에 본사를 둔 유통체인 미스터맥스(MrMax)가 작년 11월부터 대만에서 수입해 PB상품으로 내놓은 LCD TV(32·19인치) 역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제품 성능은 비교적 떨어지지만 일본 제품의 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보니 소비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대만과는 달러로 결제하고 있어, 최근 계속되고 있는 엔고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고 한다.

 그렇지만 안타깝게도 일본 소형가전 시장에 생긴 틈새에서 우리 제품을 찾아보기는 힘들다. LG 세탁기 정도만 양판점에 진열돼 있는 정도이다. MrMax 구매 담당자는 LCD TV의 후속으로 블루레이디스크 플레이어를 PB상품으로 기획하면서 한국의 유명 메이커와 접촉했지만, 한 곳은 답장조차 없었고 다른 한 곳은 관심없다는 대답을 전했다고 한다. 그 동안 일본시장을 뚫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 이제 포기한 것인지, 일본 소형가전 시장에 진출해 봤자 크게 득될 게 없다는 계산인지 모르겠지만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본은 혼자 사는 독신 세대가 점점 늘고 있다. 젊은이들의 결혼관도 바뀌고, 고령화로 혼자 지내는 노인들도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곧 소형 가전에 대한 수요가 꾸준히 늘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다. 지금 중국 하이얼은 일본 소형가전 시장을 겨냥해 온갖 마케팅 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중국이 일본시장을 차지하도록 그대로 두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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