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만화­] 이두호 작가/김종래作 ’눈물의 수평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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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생대회에 나가면 크고 작은 상을 휩쓸던 대구 소년 이두호의 꿈은 ‘화가’였다. 화가를 꿈꾸던 소년은 김종래의 만화를 보며 ‘재미있다’는 이유로 그림과 글을 흉내내곤 했다. 김종래 작가의 ‘눈물의 수평선’을 보며 충남 예산이라는 지명을 처음 알았고, 친구들과 함께 주인공 김일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갑론을박을 벌이다 후속 권이 나오자 대본소로 달려가 확인하기도 했다.

 지난 25일 세종대학교에서 만난 이두호 작가(65)는 고(故) 김종래 작가의 ‘눈물의 수평선’을 ‘처음 읽은 제대로 된 만화’로 기억했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단 한 번 읽은 만화지만 그는 만화 속 장면과 대사를 마치 어제 읽은 것처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여자주인공이 항숙인데, 남자주인공 김일이 군대 간 사이 살기 힘들어 술집에 나갔다 살인 누명을 쓰게 되거든요. 그때 전쟁터에서 눈을 다친 김일이 법정에 선글라스를 쓰고 나타나는 장면이 있는데, 선글라스 밑으로 눈물이 반짝거리면서 독백을 해요. ‘몰랐소, 몰랐소, 나는 몰랐소. 당신이 그런 모진 운명에 처했는지 나는 몰랐소’라는 말이 아직까지도 기억납니다.”

 그는 “한국전쟁을 겪은 기억과 사춘기의 감성이 더해져 더 슬프게 읽었다”고 덧붙였다.

 웬만한 가정 형편으로는 만화책을 살 수 없을 만큼 만화가 귀한 유희거리였던 전후 시절, 이두호 작가는 김종래 작가의 만화를 보며 슬퍼하고 분노했다고 한다. 그는 6학년 때 김종래 선생의 신작을 보고 싶어 잘사는 친구를 설득해 서점에서 책을 사 같이 읽기도 했다는 에피소드도 들려줬다.

 이 작가에게 그림을 가르쳐준 남무오 선생이 “그림은 다른 작가들과 엇비슷하지만 내용은 제일 뛰어나다”고 평했을 때 그는 속으로 “그림도 최고인데”라고 생각했을 만큼 김종래 작가에게 빠져 있었다고 한다.

 무엇이 어린 이두호를 그토록 김종래 작가에게 빠지게 했을까. 이 작가는 “마치 마술에 걸린 것과 같았다”고 대답했다.

 이두호 작가와 김종래 작가의 인연은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림에 소질이 있지만 가난한 형편 탓에 야간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 화실에서 소일거리를 하던 그에게 만화의 표지작업을 해달라는 주문이 들어왔는데 그 작품이 김종래 작가의 ‘박문수전’이었다.

 이 작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감개무량해서 그렸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절친한 친구인 이희재 작가가 고 김종래 작가의 문하생 생활을 한 인연으로 만화가가 된 후 몇 번 마주할 기회가 있었지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그 사실을 한 번도 말한 적은 없다고 한다.

 후배들의 존경을 받는 만화가의 위치에 선 이두호 작가는 사회적인 여건 때문에 창작을 이어가지 못한 선배 작가를 안타까워했다.

 “검열도 심하고, 인세도 열악해서 만화가들이 지속적으로 작품을 하기가 참 어려웠습니다. 김종래 선생님도 후반에는 동양화 작업을 하셨지요. 만화가는 죽을 때까지 만화를 그리고, 화가는 죽을 때까지 붓을 놓지 않는 게 가장 행복한 일 일텐데….”

 만화를 홀대한 우리 과거 탓에 지금 ‘눈물의 수평선’은 구하기조차 어려운 희귀본이 됐다.

  이 작가는 “다시 보면 그때 그런 감동이 되살아나지 않을까 두렵지만 그래도 그 책을 어디선가 구해 한번쯤 다시 보고 싶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이수운기자 pero@etnews.co.kr

 

 <눈물의 수평선은?>

 ‘엄마 찾아 삼만리’로 1960년대 전 국민을 울렸던 김종래 작가의 1957년 작. 한국전쟁이 일어난 시기 충남 예산의 고기잡이를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전쟁을 겪으면서 주인공인 김일, 최도천, 항숙이가 비극적인 운명에 처하게 되는 내용을 독자의 심금을 울리는 감성으로 그려냈다.

 김종래 작가는 ‘눈물의 수평선’과 ‘엄마 찾아 삼만리’로 한국 고전 극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자리 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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