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dustry Review] 어느 애널리스트의 하루-송종호 대우증권 반도체 팀장

 세계 경제가 불황의 깊은 터널을 지나고 있다. 터널 속에서 누구도 우리의 위치를 알 수 없다. 어두운 터널 한가운데 서 있는 투자자에겐 나침반이 절실하다. 증권사 리서치센터는 투자시장에서 나침반이자 등대가 된다. 투자라는 거친 바다 위에서 길을 잃을 때 데이터와 기업의 기초체력을 점검하며 기업과 산업, 나아가 국가 경제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리서치센터 애널리스트의 하루를 통해 여의도 증권맨을 삶을 조망해본다.

 

 “반도체 업황은 치킨게임이 끝났어도 수요가 없어 당분간 추천하기 힘듭니다.”

 “그래도 대만과 일본업체들이 하나둘 물러나서 장기적으론 국내업체의 경쟁력에 도움이 됩니다.”

 대우증권 여의도 본사 지하 콘퍼런스 룸에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오전 7시 20분이면 애널리스트, 영업대표, IB전문가 등 150여명이 한자리에 모여 이런 얘기를 나눈다. 애널리스트들이 경제전반이나 산업 혹은 기업 분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회사 전문가들 앞에서 발표하는 자리다.

 송종호 팀장(38)도 어김없이 참석한다. 그에게 아침 회의는 산업과 경제 전반에 걸쳐 이해와 의견을 주고받는 자리다. 일선 영업현장에서 뛰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기회다. 특히 요즘같이 글로벌 경제의 영향으로 시황이 급변하는 상황에선 김성주 시황담당 투자전략팀장이나 고유선 거시경제분석 연구위원의 분석은 반도체 시장의 수요와 공급을 예측하는 데 필수자료다. 반도체와 IT하드웨어 애널리스트로서 본인이 발표장에 서는 날이면 전날 자정을 넘기며 자료를 준비한다.

 송 팀장이 이처럼 이른 아침부터 쉴 새 없이 일하는 이유는 리서치센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4년 전인 2005년만 해도 우리나라 증권사 애널리스트(금융투자분석사)는 777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4일 기준 국내 애널리스트는 1430명으로 배 이상 늘었다. 자본시장법 시행으로 신설 증권사들이 대거 진입하며 경쟁이 늘었다. 최근엔 대형IB의 몰락으로 외국계 증권사 출신자들도 가세해 경쟁이 늘었다. 외국계 증권사를 포함해 53개 증권사에 대부분 반도체 애널리스트가 포진한만큼 이 분야의 경쟁은 치열할 수밖에 없다.

 아침시각 그의 주요 업무 중 하나는 증권사의 고객인 기관투자가와의 통화다. 그가 분석한 보고서를 바탕으로 연기금이나 펀드의 운용담당자가 해당 종목에 대해 주문을 하거나 팔 수 있도록 조언한다. 53개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경쟁하는만큼 뭉칫돈을 들고 투자를 고민하는 기관투자가에게 어필할 수 있도록 더 많은 대화를 나누려는 의도다.

 그는 애널리스트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전화 통화와 스킨십을 꼽는다.

 직접 얼굴을 맞대는 스킨십을 통해 절친해지면 분석 기업이나 기관투자자로부터 다양한 정보를 얻게 된다는 것. 또 하루 3분 통화로 기관투자가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알려 리포트의 신뢰성을 높여준다. 그는 올해 계획에 1주일에 100회 전화하기를 포함시켰다.

 11시 30분부터 시작되는 2시간의 점심 식사도 주요 투자자와의 미팅으로 할애한다. 주요 투자자나 기업 IR담당자와 친밀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오후 시간엔 펀드매니저와 통화를 하거나, 기업을 방문해 IR 담당자와 대화를 나누며 기업 정보를 챙긴다. 다른 애널리스트보다 많은 정보를 얻어내면 정확하고 개성 있는 보고서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펀드매니저로 일하면서 해외 기관투자가들과 인연을 맺은 것도 애널리스트 이력에 보탬이 됐다. 대우증권에서 하이닉스 해외 로드쇼를 따낸 것도 그가 최초라며 그 이면에는 많은 해외 기관투자가를 알고 있던 게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대기업의 해외 IR 행사는 외국계가 독차지하게 마련인데 펀드매니저로 활약했던 당시 다양한 네트워크를 확보했던 것이 기회로 돌아온 것이다.

 회의와 미팅, 전화로 오전과 오후를 보낸 밤시간, 그를 기다리는 건 애인이 아니라 보고서 작성이다. 보고서는 영문과 국문, 두 가지로 작성한다. 증권사가 글로벌화되면서 해외 고객사도 크게 늘어 영문보고서 작성이 필수가 됐다. 사내 번역팀에 의뢰해도 되지만 미래를 대비해 자신의 영작 실력을 키우겠다는 욕심에서다. 한 주에 보통 2∼3차례 보고서를 낸다. 대우증권에서 한해 발간되는 보고서가 6000건에 달하는 것에 비교하면 그가 차지하는 몫도 상당한 셈이다.

 그는 기업 분석 보고서 작성에서 가장 중요한 기준을 재무건전성과 기업의 실적으로 꼽았다. 기업을 바라보는 기초체력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성장성이 녹아 있는 비전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그의 보고서가 기업에는 장단점을 노출하고 투자자에겐 수익률과 직결되는만큼 보고서 작성은 신중할 수밖에 없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나 하이닉스 등 굵직한 IT 대기업의 IR나 경영부서에 몸담았던 인재들이 증권가로 발을 옮겨 보고서 경쟁을 하기 때문에 보고서 작성에 더 힘을 기울이고 있다. 송 팀장은 향후 꿈을 묻는 질문에 “돌아오는 일요일에도 미국 증시와 한국 반도체산업의 동향을 체크하기 위해 사무실에 있을 것”이라며 “애널리스트들도 여러 경제주체와 마찬가지로 어려워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이다”고 대답을 갈음했다. 결혼 적령기를 넘긴 그는 아직 미혼이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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