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4월 7일. 일본에서는 이색적인 행사가 진행됐다. 일본의 한 SF 작가가 만들어낸 만화 주인공 ‘아톰’의 탄생을 기념하는 이 행사는 특정한 지역을 가리지 않고 전국 각지에서 열리면서 수많은 이를 즐겁게 해주고 일본 경제에도 좋은 영향을 줬지만 사실 그 자리에 주역은 존재하지 않았다.
2003년이 한참 지난 지금에도(물론 당시에도) 인간처럼 마음을 가지고 하늘을 날며 10만마력의 힘을 자랑하는 어린이형 로봇은 등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SF 작품은 ‘미래를 예지한다’고 이야기하곤 하지만 실제로 SF 속의 예언이 제대로 들어맞은 일은 많지 않다. 어느 정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시기가 엄청나게 다르게 마련이고, 심지어는 타임머신이나 인체의 축소, 투명 인간처럼 과학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많다.
잠수함이나 달 여행 등으로 ‘성공한 예언자’라고 알려진 쥘 베른의 작품도 이런 비판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인류는 쥘 베른의 작품 ‘지구에서 달까지’처럼 플로리다(NASA)에서 달까지 날아갔지만, 그 방법은 쥘 베른이 생각한 대포가 아닌(물론 앨런 포의 기구도, 웰스의 반중력도 아니다.) 로켓이었고 쥘 베른이 죽고 한참 뒤에야 실현됐으니 말이다.
이는 어느 일면만을 살펴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 SF가 과학이 아닌 상상과학이며 어디까지나 다양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작품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히 쥘 베른의 달 여행 이야기는 사실이 아니다. 대포로 달까지 날아간다는 것은 적어도 지금 보기에는 허황되고 불가능한 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쥘 베른의 이야기에는 이제까지 수없이 등장했던 용을 타거나, 날개 옷을 입고 날아오르는 것 같은 달나라 여행 이야기와는 다른 무엇이 존재한다. 쥘 베른의 이야기에는 마법이나 기적이 등장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동아줄을 기다리지도, 달로 여행을 떠난다는 백조에 줄을 매달고 날아오르는 장면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상황을 사실로 받아들이고 오직 인간의 기술과 노력만으로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진취적인 도전 정신이 존재할 뿐이다. 쥘 베른의 이야기를 읽고 본 이들은 달 세계 여행이 전설이나 신화 속의 꿈이 아닌,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가능성’의 세계라고 느끼게 되고 나아가 달세계를 향해 도전하는 것이다.
2003년 4월 7일 축제 현장에 10만마력의 소년 로봇 아톰은 없었지만, 박사의 손에 이끌려 일어서는 아톰 모양의 기계 인형을 보는 아이들의 마음 속에 분명 언젠가 아톰과 만날 수 있다는, 또는 그 자신이 아톰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마치 수십년 전 아톰을 보고 자라난 아이들이 아시모 같은 인간형 로봇을 만들어낸 것처럼.
SF에서는 예언을 하지 않는다. 단지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를 예언이라 믿고(또는 사실이라 믿고) 그들 스스로 현실로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비록 시기와 방법은 다를지 몰라도 결국 SF의 예언은 실현되고 만다. SF가 가진 힘,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사람의 마음을 이끄는 그 힘을 통해서다. 그것이 바로 SF가 가진 예언능력의 정체가 아닌가 싶다.
전홍식 SF&판타지 도서관장 sflib200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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