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중계권자인 IB스포츠와 지상파방송사 창구인 KBS의 협상이 5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공짜인 지상파 방송으로 중계를 못 볼 뻔 했던 야구 팬은 안심하게 됐다. 그래도 일부는 분을 아직도 삭이지 못한다. 협상 때 야구팬은 시청권을 이유로 KBS와 IB스포츠는 물론 정부까지 비난했다. 이들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이들의 비난에 견해를 같이 할 수 없다. 스포츠 중계는 엄연히 상품이기 때문이다. IB스포츠는 중계권료를 정당하게 받으려 했을 것이다. KBS도 예산과 예상 수익을 감안해 IB스포츠의 제안을 거절했을 뿐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역시 올림픽과 월드컵만으로 정한 보편적 시청권의 대상이 되지 않아 중계권 협상을 중재할 이유가 없다.
시장경제 사회에서 상품을 사려면 값을 치러야 한다. WBC 중계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서는 당연한 개념이 우리나라에는 없다.
근본적인 이유는 지상파방송이 우리 방송산업을 독과점하면서 시청자가 공짜 방송에 익숙해진 데 있다. “지상파TV를 보려고 케이블TV나 위성방송에 가입했는데 뭐가 공짜라는 얘기냐”는 반박이 나올 수 있다. 언뜻 맞는 말 같은데, 엄밀히 따지면 그렇지 않다. 시청자가 케이블TV와 위성방송사에 내는 돈은, 엄밀히 말하자면 ‘지상파TV 시청의 대가’가 아니라 ‘이를 깨끗한 화면으로 보는 것의 대가’다. TV에 붙은 안테나로 보는 지상파방송 화면은 엉망이다. 심지어 신호가 잡히지 않는다. 지상파방송사는 이런 시청 환경 개선까지 유료방송사에 다 떠 넘기면서 대가도 제대로 내지 않는다. 오랜 방송콘텐츠 독점으로 지상파방송사의 힘이 절대적인 결과다. 더욱이 지상파방송은 계열 프로그램공급업체(PP)를 통해 유료 방송채널까지 장악했다. 공짜 방송인 지상파방송사의 입지가 이렇게 절대적인 나라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미디어 관련법 파동으로 사회가 시끄러웠다. 법안마다 쟁점이 수두룩하지만 핵심 쟁점은 지상파방송에 대한 신문과 대기업의 지분 참여 규제 완화다. 여당과 정부는 미디어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불가피한 조치라고 강변한다. 야당과 방송사는 정권이 일부 신문과 재벌과 함께 여론을 장악하려는 의도라고 주장한다. 여야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공론화하겠다며 한발씩 물러났지만 100일 뒤에도 결과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본다. 서로는 물론이고 미디어를 보는 양측의 시각은 바뀌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기 때문이다.
양측의 주장 자체는 모두 일리가 있다. 미디어산업 육성도 필요하고, 여론 독과점도 막아야 한다. 그런데 두 주장이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가. 아니다. 서로 모순되지 않는 해법이 있다. 미디어를 정말 산업으로 키우겠다면 시청자가 공짜 콘텐츠보다 유료 콘텐츠를 더 찾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필요하면 심의 규정과 소유제한 등 유료방송을 옥죄는 각종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이와 동시에 철저하게 지상파 위주로 짠 방송 정책도 근본적으로 혁파해야 한다. 여론을 독점하지 못하는 지상파방송사에 신문과 재벌이 뛰어든다고 무슨 문제가 생기겠는가. 여당과 정부가 이러한 미디어 철학과 정책 비전 없이 미디어산업 육성 논리만 되풀이한다면 이는 정략을 숨긴 허울일 뿐이라는 의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신화수 취재담당 부국장 h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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