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IT 기술과 함께 화려하게 등장한 신종직업 프로게이머. 역설적이게도 프로게이머의 트레이드 마크는 묵직한 브라운관(CRT) 모니터다. 최근 대회 주최측의 협찬을 못 이겨 LCD 모니터로 ‘전향’한 선수들도 있지만, 일부는 아직 배불뚝이 CRT를 고집한다. 빠른 화면 전환시 LCD 화면에 남는 영상(잔상) 때문에 게임에 집중하기 어려운 탓이다. LCD 기술은 날로 발전하지만 기계적으로 나타나는 수치와 인간이 실제로 느끼는 감성에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밝고 선명한 화면, 눈 피로도↑=LCD·PDP간 세력 싸움에서 PDP가 고전한 결정적 요인의 하나가 밝기 차다. LCD가 평균 400룩스(㏓) 정도의 밝기를 구현하는데 비해, PDP는 200㏓ 안팎이다. 가전제품 매장에서 PDP TV보다 LCD TV가 더욱 선명해 보이는 이유다. 그러나 가정에서 시청하기에는 250㏓ 내외가 적당하다는 의견이 각종 연구를 통해 제기됐다. 오랜 시간 볼 때엔 지나치게 밝은 화면이 되레 눈의 피로감을 배가시킨다는 지적이다. 서울대 디스플레이연구센터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밝은 TV는 30분 이내 시청 시간서만 높은 선호도를 보였다. 2시간 이상 시청할 경우 밝기와 선호도 간 상관관계가 사라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활리 서울대 디스플레이연구센터 연구원은 “최근 연구결과에서 TV 밝기보다 영상의 부드러움과 미세함이 시청자 만족도에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됐다”고 설명했다.
◇영원한 숙제, 잔상=잔상 현상은 여전히 풀리지 않는 LCD의 숙제다. CRT·PDP와 달리 일정 시간에 화상을 고정시키는, 이른바 ‘홀드타입’ 디스플레이의 태생적 한계다. 60㎐ LCD의 경우 초당 60개의 정지 화상을 합쳐 동영상을 구성한다. 인간의 눈도 대략 60㎐ 정도의 반응속도를 보여 느린 화면서는 잔상현상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공상과학(SF)영화·스포츠처럼 빠른 화면전환이 이뤄지는 콘텐츠는 액정 재배열에 걸리는 시간탓에 잔상이 남을 수밖에 없다. 최근 이를 극복하기 위해 각 화면 사이에 검은색 화면을 삽입하거나 앞·뒤 화상 사이에 가상 화면을 집어 넣은 120㎐ 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그래도 아직 CRT·PDP에 비하면 박진감 있는 콘텐츠 시청에 불리하다는 지적이다. 내달 8일 열리는 ‘CES 2009’에서 삼성·LG가 200㎐ LCD TV를 필두로 내세운 것만 봐도, 가전사들이 패널 반응속도 제고에 얼마나 신경쓰는지를 알 수 있다.
◇풀HD보다 중요한 것=최근 소비자들이 많이 구입하는 40인치대 LCD TV의 경우, 풀HD 모델과 일반 HD 모델 가격차는 평균 15∼50만원 선이다. 그러나 TV를 볼 때 두 제품의 화질 차이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통상 풀HD TV는 화면을 형성하는 가로 주사선이 1080개 이상, 일반 HDTV는 720개 이상인 제품을 의미한다. 풀HD TV에 50%나 주사선이 많아 계산상 훨씬 선명한 화면을 구현할 수 있다. 문제는 공중파 방송 규격인 아날로그 방식이 HD급 화질을 넘는 화면을 전송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디지털방송으로 완전 전환되는 2012년에 가서야 모든 프로그램이 HD급 화질로 전환된다. 이 때도 풀HD급 콘텐츠를 전송하지 않는다. 풀HD 화면은 블루레이 플레이어를 이용한 게임 등 극히 일부에 한정적으로 사용된다. 커다란 대접을 준비하고도 채워 넣을 내용물이 없는 셈이다. 황기웅 서울대학교 전기·컴퓨터공학부 교수는 “기계적 규격이 상승한다고 해서 반드시 TV 시청자의 만족도가 높아지지는 않는다”며 “실제 인간이 신체적으로 나타내는 반응을 수치화해 이를 기술개발에 적극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석현기자 ahngija@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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