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동떨어진 에너지 절감정책

 업계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에너지 절감정책이 업계 반발을 사고 있다.

 ‘저탄소, 에너지 절감’ 기조도 좋지만 과도한 규제가 업계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4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월 12일 공고, 시행된 환경부의 ‘환경표지 대상제품 및 인증기준’ 고시에 대한 업계 불만이 높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PC와 모니터를 정부에 공급하기 위해 환경표지(친환경라벨)를 받으려면 에너지 저감을 위해 제품 전면에 전원을 완전히 차단할 수 있는 온오프(ON/OFF) 스위치를 달도록 한 규정이다. 전면에 달지 않는다면 스위치 위치를 전면에 표시해야 한다. 또 PC와 모니터를 일정 시간 동안 사용하지 않는 경우 절전(슬립)모드로 들어가게 하는 시간을 사용자가 임의대로 변경할 수 없도록 HW적으로 강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관련 기업들은 대·중소기업을 막론하고 업계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은 조항이라고 입을 모았다. PC의 파워서플라이와 직접 연결되는 전원완전차단 스위치 적용 모델은 소비자 활용도가 낮아 이미 2년 전부터 시장에서 도태돼왔다. 전원을 직접 차단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하드디스크 오작동 및 데이터 분실, 소비자 불만 발생 가능성 증대 등이 이유였다. 실제로 최근 출시되는 PC는 가능한 한 심플한 디자인을 위해 전원완전차단 방식의 스위치는 물론이고 리셋 버튼도 없이 전원을 켤 수 있는 버튼만 전면에 장착하고 있다.

 시장 트렌드에도 맞지 않을 뿐더러 정부 조달 시장만을 위해 생산라인 및 금형을 변경하면 원가상승 요인이 발생한다는 게 업계 공통 의견이다. 모니터 역시 금형 수정 등으로 인한 단가 상승이 예상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최근엔 전원 차단 스위치는 달지도 않을 뿐더러 스위치를 PC 후면에 달아도 PC를 책상 안으로 집어넣는 최근 트렌드를 생각하면 실질적인 효용성조차 없다”고 말했다.

 한 중소 PC 제조업체 관계자는 “전원 완전차단스위치 기준은 현재 삼성·LG도 충족하기 어려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인증비용이나 제품 재설계에 따른 비용을 생각하면 많은 중소기업이 공공조달 부문을 포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고시가 시행된 9월 12월 이후 정부조달을 위해 친환경라벨을 받은 제품은 전무하다.

 절전 모드로 전환하는 시간 규정도 마찬가지다. 소비자가 조작할 수 있는 절전 모드로의 이행 시간은 윈도 등 운용체계(OS)를 통한 것으로 이를 기계적으로 강제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관련 고시를 마련한 친환경상품진흥원 측은 업계 반발이 일자 뒤늦게 업계 의견을 수렴하고 있지만 어느 수준까지 고시 개정이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친환경상품진흥원 측은 “현재 전문위원 의견을 수렴 중이며 12월 환경부에 고시개정 요청을 할 것”이라며 “업계 의견 중 타당한 부분은 응당 수렴하겠지만 유지해야 할 부분은 계속 가져가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업계는 ‘저탄소 녹색성장’ 기조는 유지하되 업계 현실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맨 처음 고시를 마련할 때 업계 의견 수렴이 없었다는 것부터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며 “저탄소 녹색성장의 근본적인 목적, 목표는 성장이 아니냐“고 반문했다.

 최순욱기자 choisw@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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