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견·중소기업 우수인력 미리 확보
엠텍비젼이라는 반도체설계 전문업체(팹리스)는 요즘 20여명의 인원을 뽑는 공개 채용을 진행 중이다. 고화소·스마트폰 시장이 내년에 본격 개화할 것으로 예상되자 주력 제품인 영상처리와 멀티미디어 솔루션 수요가 늘어날 것에 대비한 인력 확충이다. 이 회사는 올해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인력을 210∼220명 수준으로 유지하면서 긴축 경영을 펼쳐왔다.
이성민 엠텍비젼 사장은 “사람을 뽑을 만큼 경기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현재 진행하는 사업이 탄력을 받고 있으며, 내년에 이를 확산시키기 위해 채용을 결정했다”면서 “좋은 인재들이 지원했다는 보고가 있어 크게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닥친 불황에 대비해 대부분의 기업이 신규 채용을 줄줄이 취소하거나 축소한 가운데 일부 중견, 중소 IT기업은 불황을 오히려 우수 인재를 확보할 절호의 기회로 삼고 있다.
평상시라면 대기업에 지원할 우수 인재를 미리 잡아 사업 확장이나 신규 사업 추진에 활용하겠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기업이 아직 많은 것은 아니다. 팹리스, SW 등 업종도 제한적이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긴축경영만 펼치는 대기업, 공기업과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자리 창출 확대를 최대 화두로 삼은 정책 당국에도 적지 않은 힘이 되고 있다.
영상보안 반도체 전문업체인 넥스트칩은 기존 사업은 물론이고 터치센서 칩 등 신규사업을 위해 내년 1분기까지 신규 및 경력 직원을 새로 뽑을 예정이다. 지난 3분기 말에 83명이었던 이 회사의 직원은 연내 90명, 내년 1분기에는 100명을 넘을 전망이다. 김경수 넥스트칩 사장은 “어렵더라도 미래를 위해 인력을 지속적으로 충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코아리버는 양대 사업군인 마이크로컨트롤러(MCU)와 터치센서 칩 사업이 내년에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인력을 늘릴 방침이다. 내년에 현 인력의 50% 정도를 충원해 40명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이다. 배종홍 코아리버 사장은 “불황에 좋은 인력을 확보할 수 있다”면서 “상황에 따라 내년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텔레칩스는 ‘좋은 사람이 있으면 언제든 뽑는다’는 채용 원칙을 내년에도 그대로 고수할 방침이다. 매년 전체 직원의 20∼30%에 해당하는 인력을 뽑았던 이 회사는 올해 국내 직원 수가 275명에 달해 증가율이 둔화되면서 10% 정도 늘었다. 서민호 텔레칩스 사장은 “경기가 안 좋으니 조금 더 기다리면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다”면서 시기를 조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티베이스·토마토시스템·MDS테크놀로지·티맥스소프트 등 전문 SW 개발업체도 각각 수십명 규모의 신규 충원 계획을 마련하고 인재확보를 추진 중이다. 경기 상황이 좋지 않지만 우수 인력을 확보하기 좋은데다 미래 사업 확대에 대비하기 위한 포석이다.
한편,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380개사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43.2%의 응답 기업이 하반기 채용계획을 취소하거나 당초 계획했던 인원보다 축소했다. 특히 하반기 채용을 취소했다는 중소기업이 17.6%로 대기업(10.6%)에 비해 높았다. 중소기업이라는 전통적인 일자리 창출 기반이 무너지는 신호탄으로 해석됐다.
유형준·설성인기자 hjyo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