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LG전자 등 최대 20% 인하 요구
대기업들이 부품소재 협력사에 납품단가 인하 압박의 수위를 날로 높이고 있다.
경기 침체로 대기업들의 설비 투자가 한동안 자취를 감출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부품·소재 등 후방산업군은 엎친 데 덮친 격이다. 대기업의 움직임은 최근 공정거래위가 ‘납품단가협의제’를 도입하고 지경부가 부품·소재산업 육성 전략을 내놓는 등 대·중소기업의 상생 협력을 유도하는 정부 의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LG전자, LG디스플레이 등 주요 반도체, 디스플레이, 휴대폰 대기업이 최근 협력사들과 내년 1분기 납품 단가 인하 협상을 진행 중이다. 특히 디스플레이 대기업들이 반도체, 휴대폰 대기업들에 비해 예년에 비해 큰 폭의 납품 단가 인하를 요구하고 있다. 압박 대상도 외국 업체보다는 주로 국내 협력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전자 LCD총괄은 내년 1분기 부품·소재 납품 단가를 지금보다 최대 20% 안팎까지 낮춘다는 방침 아래 협력사와 협의 중이다. 삼성전자가 분기마다 5% 안팎 납품가를 인하·조정해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인하폭은 극히 이례적인 수준이다. LCD 패널 부품 업체인 A사 대표는 “이미 삼성전자로부터 20% 정도 납품 단가를 내리겠다는 통보를 받았다”면서 “솔직히 회사 문을 닫아야 할 정도의 살인적인 인하폭”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LCD총괄은 지난 3분기와 올 4분기 판가도 많은 경우 10% 안팎으로 크게 인하했다.
LG디스플레이도 마찬가지다. LG디스플레이는 최근 마무리한 4분기 판가 인하 협상에서 3분기에 비해 최고 10% 이상 가격을 내렸다. 내년 1분기 판가 협상이 남아 있지만 LG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의 인하폭과 비슷한 수준에서 반영했다는 점에서 역시 큰 폭의 가격 인하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됐다.
품목과 협력사마다 차이는 있지만 삼성·LG디스플레이가 대규모 판가 인하를 단행하려는 제품들은 외국 업체보다는 국내 협력사들이 다수 포진한 임가공류의 부품·소재인 것으로 알려졌다. 게다가 최근 수요 침체는 납품 물량 축소로 이어져 그 여파는 LCD 후방산업군에 이중·삼중고로 번지고 있다.
삼성전자 LCD총괄과 LG디스플레이에 공급하는 부품·소재업체들은 일부 협력사를 제외하면 올 4분기 발주량이 많게는 30%가량 급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LG디스플레이의 협력사인 B사 대표는 “4분기 주문량은 3분기보다 20% 가까이 줄었다”면서 “물량이 감소한 대신 납품 단가는 2% 정도 인하하는 것으로 합의했다”고 말했다.
반도체·휴대폰 부품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큰 폭의 단가 인하 압력이 덜한 편이다. 삼성전자·LG전자 등이 올해 3∼5% 휴대폰 부품 납품 단가를 인하, 이미 바닥에 달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반도체총괄과 거래하는 PCB협력사 D사는 “내년 메모리 모듈용 기판 공급가를 3%가량 인하하기로 계약했다”고 말했다. LG전자 휴대폰 부품 협력사인 E사도 올해 분기당 5%의 단가인하가 이뤄진만큼 내년 납품가도 올해 인하선에 머물 것으로 내다봤다. 빌드업 기판 등 휴대폰 부품·소재 공급 물량은 내년 삼성전자 3∼4%, LG전자 8∼10% 증가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에 대해 삼성전자 측은 “상생 협력을 강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렇게 무리한 수준의 판가 인하는 있을 수 없다”면서 “판가 인하를 최대한 자제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공정위는 최근 원자재 가격 변동 등으로 하도급 대금을 올려야 하면 대기업에 납품 단가 조정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도급 법 개정안을 의결한 바 있다.
서한·설성인·안석현기자 hseo@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