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정부 경영합리화 요구에 `백기`

 은행들이 정부의 경영합리화 양해각서(MOU) 요구에 백기를 들었다.

 11일 은행업계는 대외채무 지급보증 대가로 정부가 요구한 경영합리화 양해각서(MOU)를 수용한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달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화 방안’ 중 은행들의 대외채무에 대해 1000억달러를 지급보증하는 대신 은행들의 경영합리화 내용을 담은 MOU를 요구한 바 있다.

 은행들은 정부가 경영에 간섭하는 것은 지나치다며 불만을 터트렸고, 신한은행 등 일부 은행은 지급보증을 받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한은행은 곧이어 정부 지급보증을 받겠다고 말을 번복했다. SC제일과 한국씨티은행 2개 외국계 은행도 마감시한인 11일 오전 9시 계획서를 제출함에 따라 18개 시중은행 모두가 정부 방침을 따르기로 결론냈다.

 ◇18개 시중은행 모두 MOU 세부 계획서 제출 완료=11일 마감시한이 다 돼서야 외국계인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이 MOU 세부 이행 계획서를 제출했다. 18개 은행이 계획서 제출을 완료함에 따라 금감원은 14일 은행들과 공식적으로 MOU를 교환할 예정이다.

 은행들이 제출한 계획서는 △은행장 등 임원 연봉 삭감과 스톡옵션 축소 △정부의 대지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자구노력 △자본확충 계획 △중기대출 확대와 가계대출 부담 완화 계획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 간섭을 싫어하는 외국계 은행들 중심으로 정부의 MOU계획서 요구를 거부해왔다”며 “그러나 대부분 은행들이 제출한 상황에서 상대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버티기는 힘들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내키지 않지만 버릴 수는 없는 카드=당초 은행들은 정부의 지급보증안을 반기면서도 적극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임을 내비쳤다. 지급보증 대가로 은행이 감수해야 하는 부담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우선 지급보증료 등의 부담이 있다. 정부 지급보증으로 차입 금리가 크게 내려가지 않으면서도 지급보증료는 내야 해 은행에 비용부담이 증가한다. 비용절감, 실물경제 유동성 지원 의무 등 정부의 경영간섭을 받게 된다는 점은 은행들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은행들은 보증 수수료 인상, 임원제재, 보증채무에 대한 담보제공 등의 부담을 지게 된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정부와 MOU를 교환하되 실제 지급보증 신청은 가능한 한 하지 않는다는 방침이다. 은행들은 MOU를 체결하더라도 실제 지급보증을 받지 않으면 MOU를 이행할 의무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정부의 지급보증은 최악의 경우를 대비한 안전장치”라며 “가능한 한 자체 신용도를 이용해 외화를 조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 글로벌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고 있어 은행들이 정부 지급보증 카드를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전문가는 “글로벌 신용 위험이 높아지면서 거래처에서 정부 지급보증을 요구하는 경우가 늘어날 것”이라며 “은행들이 ‘울며 겨자먹기’로 정부 요구를 수용한 이유도 그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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