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감이다.’ 옛 어른들의 말을 빌려 딱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은 없다. 이근영 익스트림네트웍스코리아 사장(44)을 대하면 열의 아홉은 같은 생각을 한다.
풍기는 외모가, 목소리가, 특유의 너털웃음이 그렇다.
그런 그가 이번에 장학사업에 수천만원을 내놓았다.
수십억원씩 기부한 사람들과 비교하면 절대 크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얻어가려고만 하는 외국계 기업이 더 많은 현실을 감안할 때 금액 이상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듯하다.
장학금 기부를 생각하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내년이면 익스트림의 한국 진출 10년인데, 그동안 한국에서 돈을 벌어갔으니 조그만 것이라도 되돌려줘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다.
본사에다가는 한국에서는 ‘한국식 마케팅’을 하겠다고 얘기했다. 익스트림 본사에서도 가장 사업을 잘하는 지사장으로 통하기 때문에 그만의 방식을 인정했다.
◇용장이다=최근 벌어졌던 군 관련 입찰.
가격 경쟁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모 회사가 익스트림과의 경쟁에서 완패했다.
이 사장은 ‘한번 질렀다’고 표현했다. 반드시 수주해야 하는 입찰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가격은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다음 말이 더 재미있다. “우리 세금 세이브(save) 됐잖아. 국가에 이런 식으로라도 기여하면 좋은거지.”
그는 일단 해야겠다고 마음 먹으면 주저하지 않는다.
이번에 장학금으로 나눔에 동참하게 된 것도 해야겠다고 마음 먹고 바로 실행에 옮겼다.
전 세계 어느 지사에서도 추진해 본 적이 없는 일을 추진하는 그가 본사에 얘기한 논리는 간단했다. 한국에서는 한국식으로 하겠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이 사장의 스타일은 직원을 뽑을 때도 드러난다.
가장 최근에 입사한 직원을 채용할 당시의 일화다.
“유학을 다녀와서 결혼을 해야 하는데, 직업이 없는거야. 그래서 뽑아줬지. 백수로 결혼하게 할 수는 없잖아. 다급했을 거야. 그래서 뽑았더니 열심히 하더라고.” 그 직원은 정식 출근을 시작한 다음주에 신혼여행을 떠났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 사장은 누가 더 똑똑한지보다는 누가 더 열심히 할 수 있는지를 먼저 본다.
남보다 한 박자 빠른 생각보다 반 걸음 빨리 움직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다.
◇지장이다=이 사장은 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다. 첫 직장은 유공(현 SK에너지)의 정보통신운영기획팀이다. SK그룹(당시 선경그룹)의 인터넷망을 오픈하는 데 실무를 담당했다. 당시의 경험이 네트워크 전체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하지만 기술적인 지식보다 더 큰 경험이 된 것은 사용자(구매자) 쪽에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됐다는 점이다.
이후 친한 선배의 요청으로 쓰리콤이라는 회사의 기술과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SK그룹에 장비를 공급하던 외국계 회사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도 많았지만, 쓰리콤을 택했다. 쓰리콤은 SK그룹과 거래가 없던 회사다.
원칙을 지키는 것이 길게 가는 방법이라는 점을 알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쓰리콤이 2000년 초반 스위치 사업을 익스트림네트웍스에 매각하면서 직원 4명과 함께 익스트림에 합류했다.
익스트림으로 옮기고 나서도 쓰리콤에서 판매했던 장비에 대한 기술 지원을 계속했다. 해주지 않아도 무방한 일이었지만, 고객의 신뢰를 얻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의 대응 방식도 비슷하다.
네트워크 장비로 인한 문제가 아니더라도 애플리케이션, 서버 등 전체 IT 인프라를 점검, 문제점을 찾아내기 위해 모든 지원에 나선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고객들은 네트워크 장비에 장애가 생기더라도 믿고 맡긴다. 신뢰가 쌓였기 때문이다.
익스트림 전 세계 지사 가운데 가장 큰 규모인 ‘KT 1700대 엔토피아 스위치 공급’도 이 같은 신뢰의 바탕 위에서 만들어냈다.
익스트림 영업본부장 시절이던 2002년에는 모교에서 경영학 석사를 수료했다. 현재는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논문을 준비 중이다.
어찌 보면 우직한 용장이라기보다는 10여년간 일관된 모습을 유지해 온 치밀한 전략가에 더 가깝다.
◇덕장이다=이 사장이 만들고 싶은 직장도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하고 싶은 곳’이다.
숫자(?)로 말하는 영업이 기본인 회사지만, 조급하게 직원들에게 결과물을 요구하지 않는다.
다른 업무를 하다가 영업으로 옮긴 직원에게는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6개월이고 1년이고 기다려준다. 열심히 하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회사 업무에서도 능력이 특출한 개인보다는 팀이 무엇인가를 하기를 바란다. 익스트림네트웍스코리아의 직원 평균 근무 연수는 6∼7년이다. 이직이 심한 외국계 통신장비회사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 사장 본인도 2000년 이후 9년째 익스트림을 지키고 있다.
몇몇 직원들은 이 사장 집 근처로 이사를 했다. 이 사장이 사람의 관계를 이처럼 중시하는 것은 그의 자라온 환경에서 비롯됐다.
열 살 때 아버님이 돌아가시면서 이 사장은 장남이라는 짐을 한 번도 내려 놓지 못하고 살았다.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첫 직장을 기름 회사인 유공으로 택한 것도 당시에 월급이 가장 많은 회사였기 때문이다.
결혼도 쌍둥이 남동생들과 여동생 등 세 명을 보내고 난 뒤 마지막에 했다.
집안이나 직장에서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만날 때도 항상 자기보다는 타인을 우선 순위에 놓고 생각하는 어쩔 수 없는 ‘장남’이다.
그렇기에 항상 주변에는 오래된 사람들이 넘쳐난다.
◆이근영 사장은
이근영 사장은 국내 통신장비 업계에서 의리로 뭉친 돌쇠로 통한다. 한번 도움을 받으면 5∼6년 후에라도 반드시 갚는다. 1990년 성균관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한 뒤 유공과 쓰리콤코리아를 거쳐 지난 2000년부터 익스트림네트웍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영업본부장을 거쳐 2005년부터 지사장을 맡고 있다.
학력에는 반드시 경영학 박사과정 ‘수료’를 명확히 해달란다. 아직 논문을 쓰지 못해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량은 소주 한 병이다.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술을 마신다. 본인이 교회에 다니기도 하지만, 목사인 동생을 생각해서 나온 나름의 공식 주량이다.
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으며 신한은행에 근무하는 부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다.
홍기범기자 kbho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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