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오션 프로젝트](41)EU 대응 전략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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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정밀화학

 유럽연합(EU)이 특정유해물질 사용제한 지침(RoHS), 폐전기전자제품 지침(WEEE), 에너지 사용제품의 친환경설계 지침(EuP), 신화학물질관리제도(REACH)를 잇따라 발표했을 때 수출 기업들은 그야말로 ‘소리 없는 비명’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신무역장벽’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규제가 광범위한데다 비용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업은 관련 분야 전문가와 사례가 부족해 EU 환경 문제에 대응하는 일은 어둠 속에서 바늘을 찾는 일만큼이나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이 같은 상황 속에서도 환경 문제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슬기롭게 극복한 기업이 있다. ‘삼성정밀화학’과 ‘송원산업’ 두 회사가 그 주인공이다. 두 회사 사례는 기업들의 EU 환경 대응 전략 발굴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화학 산업의 본고장 유럽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지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삼성정밀화학에서 생산한 제품은 전 세계 66개국에 수출된다. 총 수출액 중 유럽 지역 비중이 19.1%, 러시아와 CIS 지역까지 합하면 23.9%에 이른다. 삼성정밀화학의 최대 수출지역이 유럽인 셈이어서 EU 환경 규제 대응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셈이다.

 삼성정밀화학은 2007년 9월 EU 환경 대응팀을 구성했는데, 특이하게도 마케팅팀에서 TF를 이끌며 총괄 대응했다. 환경 규제 대응은 곧 비즈니스라는 회사 방침이 반영된 것이다.

 삼성정밀화학은 무엇보다 정확한 정보 수집에 총력을 기울였다. 삼성 내 광범위한 지식 네트워크를 동원하는가 하면, 외부 환경 규제 관련 활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내부적으로는 해외 영업팀을 통해 고객사의 요구 사항을 수집했고 삼성지구환경연구소와 삼성경제연구소가 주관한 화학 관계사 REACH 정보 교류회에 꾸준히 참가했다. 대외적으로는 기술표준원의 기술무역장벽 회의, 한국정밀화학공업진흥회의 REACH 대응위원회, REACH 엑스포도 적극 활용했다.

 이 회사는 대응 역량을 분석한 결과, EU 환경 규제 중 REACH는 선행 사례가 없는 현재 진행형 법규이므로 자체 인력만으로는 대응이 힘들다는 평가를 내렸다. 곧 외부 컨설팅 회사인 ‘KIST-유럽(KIST 유럽 분원)’과 협력계약을 맺고 회사 내 전문 인력 양성에 나섰다.

 삼성정밀화학에 또 하나 주목할 점은 원료를 공급해주는 협력사와의 관계 설정이다. 삼성정밀화학 측은 강제적으로 사전 등록할 것으로 요구하기보다는 KIST-유럽과 함께 협력사의 사전 등록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윈윈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EU 환경 규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협력사에는 인센티브를 제공함으로써 사전 등록 비용 부담을 완화해주고 있다. 이 회사는 생산 제품 재료의 사전 등록을 9월 말 완료했으며 조만간 공급 원료 및 신제품도 사전 등록할 계획이다.

 장균우 삼성정밀화학 마케팅팀장은 “이제 선진국은 한국을 그들과 동일한 수준의 경쟁자로 인식하고 환경 규제를 통해 자국 산업 보호 정책에도 나서고 있다”면서 “비즈니스와 연관된 제2, 제3의 유사 REACH 규제들이 발생할 예정이어서 전략적인 대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송원산업

 “고객의 신뢰를 얻기 위한 숨가쁜 여정이었습니다.”

 울산에 본사를 두고 있는 송원산업은 산화방지재, PVC안정재, Tin중간체, 폴리우레탄수지, 고분자응집제 등을 생산하고 있는 정밀화학기업이다. 이 회사는 중소기업 환경 규제 대응의 전형적인 모범 사례로 꼽힌다. 송원산업의 대응과정에서 가장 돋보인 점은 의사결정권을 가진 경영진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했다는 점이다. 사원급에서 문제점을 발견해 상부에 보고하고 환경 규제 대응의 중요성을 설득하는 데 시간을 보내는 다른 회사와 달리 신속한 대응이 가능했다.

 2007년 4월 국내에서는 거의 최초로 규제 대응 고문 기관(C사)과 유일대리인 계약을 하고 연구소장이 총괄하는 REACH 대응팀이 먼저 대응에 나서다보니 협력사의 이해 부족으로 어려움도 적지 않았다. ‘REACH가 뭐냐’는 초보적인 질문부터 ‘회사 기밀’이라면서 소극적으로 나오는 일이 태반이었다. 송원 제품을 구매해주는 고객사에서는 ‘무조건 책임을 지라’는 확약서를 요구하기도 했다. 상당한 비용 부담에 따르는 고충은 더 설명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주기적인 온오프라인 미팅으로 단계별 진행 상황 점검하는 등 구매 및 공급자재성분조사를 대부분 마무리했다. REACH 사전 등록도 마쳤다.

 이후 송원산업은 환경 규제를 위험 요인으로 인식한다는 고객사의 상황을 파악하고 고객사의 신뢰를 얻기 위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가동하기 시작했다. 바로 고객사에 분기별 REACH 대응현황을 소식지 형태로 만들어 온라인으로 배포한 것이다.

 11월 소식지는 사전등록결과확인서로 꾸며졌다. 송원산업의 제품을 유일대리인이 사전등록했음을 증명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연말에는 REACH 웹 사이트를 송원산업의 홈페이지에 공개하고 더욱 심도 있는 고객사의 의사소통에 나설 계획이다.

 김상하 송원산업 연구소장(상무)은 “환경 문제는 비록 많은 비용과 노력이 필수적으로 수반되는 제도지만, 글로벌 시대를 살고 있는 한 전 세계인이 책임져야 하는 이슈”라면서 “유럽에서 시작한 환경 대응은 전 세계적으로 급속히 퍼져나갈 것이므로 여기에 적극 대응하지 못한다면 기업 생존 자체가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에 송원산업은 일찍부터 환경제도 대응전략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이영수 소장 인터뷰

 “규제 극복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개발해 진입장벽을 세운다는 전략으로 대응하십시오.”

 이영수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소장은 환경 규제 전략을 제대로 세우면 규제 비용보다 더 많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며 중요한 것은 환경 규제를 보는 관점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관점의 차이는 환경 대응 우수 기업과 실패 기업을 가르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이 소장은 “환경 규제에 잘 대응하는 우수기업들은 환경 문제를 비용 측면에서만 고려하지 않고 비용 편익 측면, 즉 제품과 기업의 이미지 사승과 신규 시장 확보 등 종합적인 분석을 통해 대응하는 것이 특징”이라면서 “반대로 잘 대응하지 못하는 거업은 환경 규제를 원가 상승 요인으로만 보고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임기응변식으로 대응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EU는 REACH 규제에 따라 상승한 원가를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계획을 세운다는 방침이어서 대응 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길도 열려 있다고 덧붙였다.

 중소기업의 환경 규제 대응에는 원칙이 있다. 바로 ‘상생’이다. 이 소장은 “중소기업 단독으로 환경 규제에 대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면서 “우선 공급망에서 대기업인 고객사와 협력,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기업이 아무리 대응을 잘해도 협력업체에서 따라주지 않으면 전체적인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두 번째 원칙은 정보 획득을 위해 다양한 길을 열어두는 것이다. 중소기업청이 지원하는 비용 지원 프로그램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이 소장은 “국가청정생산지원센터 내 REACH 기업지원센터에서는 61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는 ‘REACH 대응 실무운영위원회’를 운영하지만 중소기업 측에서 자료 요구는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는 별도의 환경팀이 있고 변호사를 활용하는 등 매우 적극적인데 이를 다른 협회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센터는 청정기반 전략기술과 에너지·자원 순환기술개발 보급 사업에 모두 475억원을 지원했으며 지원대상의 80%가 중소기업이었다”고 덧붙였다.

 이 소장은 “내년엔 환경규제 대응과 관련해 REACH 본 등록이 시작되므로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비시험물질자료생산프로그램(QSAR)을 활용해 물질자료를 생산하는 등 기업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소장은 “센터는 RoHS와 에너지사용제품의 친환경설계지침(EuP)에 대응해 각각 수원·천안·대전·광주·구미 등 5개 지역의 전문기관과 연계해 컨설팅 및 분석지원서비스를 진행하는 한편, EuP관련 인증을 획득할 수 있는 시범사업도 추진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류현정기자 dreamshot@et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