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는 안보상의 이유로 전파 사용을 억제하는 정책을 펴왔습니다. 당연히 전파 관련 국제 표준화 회의에도 무관심했죠. 1995년 처음 국제전기통신연합(ITU) 회의에 갔을 때는 정작 중요한 회의에 참석조차 못했습니다. 주변 회의만 주로 다니고 논의에서도 철저하게 소외됐지요.”
전파 관련 국제 표준화 회의에서 ‘전파 한국’의 명성을 드높이고 있는 전파연구소 위규진 전파자원연구과장은 13년 전 우리나라의 국제 전파 표준화 활동을 이같이 반추했다. 그는 각종 워킹그룹(WG)에서 의장을 맡으면서 국내 실정에 맞는 전파 표준화를 위해 뛰고 있는 ‘전파개척자’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에 들어서야 비로소 전파 관련 국제 공조에 나섰다. 지리적으로 3면에 바다를 끼고 있다보니 주변국들과 상호 전파 간섭현상이 드물어 국제적 협조가 필요치 않았기 때문이다. 분단 국가라는 특성도 한몫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동통신이 활성화되자 사정이 달라졌다. 서비스를 원활하게 제공하기 위해 국제 표준화 회의 전문가가 절실했다. 전파연구소에 연구직 박사1호로 들어온 위규진 과장이 이 작업에 적임자였다. 그는 1년에 반 가까이를 해외에서 열리는 국제 표준화 회의에 매달렸다.
하지만 국제 회의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미 공고한 내부관계(이너서클)가 형성돼 있는 가운데 그 틈을 파고드는 것이 쉽지 않았다. 위 과장은 회의의 이슈를 완벽하게 이해하는 한편 합리적인 방향을 제시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를 바탕으로 그는 국제 회의에서 ‘키 플레이어’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4세대 이동통신 ‘IMT어드밴스트’ 등 각종 워킹그룹의 의장 역할을 맡게 되고 자연스럽게 국내 사정에 맞는 국제 주파수 정책을 제안하게 됐다.
이와 맞물려 국내 이통 산업 발전 역시 큰 역할을 했다. 위 과장은 “국제 회의에서 우리나라의 위상이 결정적으로 높아진 것은 세계 최초로 CDMA 이동통신기술을 상용화하면서부터”라며 “해외에서 우리를 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고 설명했다.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마침내 1997년 IMT-2000 표준화 회의를 국내에 유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동통신 산업 발전에 대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은 것이다. 국내 전문가들이 대거 참석해 목소리를 내면서 차세대 이동통신 표준이 국내 산업에 유리하게 결정될 수 있었다. 또 우리나라가 미국, 일본, 유럽과 함께 3G 이통 기술규격 개발 협의체인 ‘3GPP’와 ‘3GPP2’의 창설멤버가 되는 쾌거도 이뤘다.
위 과장은 다음 달에도 주파수 영토 확장에 나선다.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이동통신 관련 회의에 참석해 다시 우리나라의 위상을 한단계 더 높일 계획이다. 그는 “과제는 삼성전자, LG전자,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이 개발하고 있는 기술을 IMT어드밴스트 표준에 많이 포함시키도록 하는 것”이라며 “IMT어드밴스트 이후의 비전에 대해서도 고민하는 등 미래를 위한 준비를 해서 항상 앞서나갈 수 있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다졌다.
황지혜기자 gotit@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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