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는 금융권에 돈보따리를 풀며 전방위 지원에 나서고 있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세계 금융위기로 번지고 급기야 부도 위기에 처한 국가들이 속출하는 가운데 국내 금융시장도 자금 경색이 심화하자 정부는 물론이고 은행과 증권사 등 제2금융권까지 모두 한국은행만 쳐다보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한국은행의 유동성 지원을 두고 신중해야 한다는 측과 더 적극적으로 유동성을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지난 23일 한국은행은 2003년 3월 이후 처음으로 통화안정증권 중도환매로 시중에 7000억원을 풀었으며 다음날에는 총액한도대출을 2조5000억원 늘리는 등 각종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금융감독당국과 시중은행들은 은행채를 사들여 달라고 한은에 촉구하고 있다. 원화 자금시장의 경색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한은이 은행채 매입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들은 은행신용도 하락에 대한 우려감으로 은행채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한은밖에 사줄 곳이 없다고 읍소하고 있다.
연말까지 만기 도래하는 은행채가 25조5000억원에 달해 차환 발행이 힘든 상황이다. 또 증권사, 자산운용사들도 펀드 환매요구에 대비해 한은이 유동성을 공급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한은은 이에 대해 신중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 현재 공개시장조작 대상 증권이 국채, 정부가 원리금 상환을 보증한 증권, 통화안정증권에 한정돼 있는데다 무엇보다 위험성이 있는 자산인 은행채를 산다는 것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통화안정증권 중도환매나 국채직매입 등 이미 발표된 유동성 공급 방안으로도 충분히 원화자금 경색을 해소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입장이다.
이한구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장도 한국은행의 유동성 공급에 “아마 시장에 나쁜 영향을 줄 것”이라며 “우리가 맞고 있는 위기는 유동성 위기가 아니라 신용 위기”라고 반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시중에 유동성은 충분하지만 경제주체들이 신용을 잃어서 서로 돈이 돌지 않는 상황이므로 유동성 공급은 좋은 해결책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번 위기가 글로벌 위기인만큼 해외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전효찬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외국의 경우 더 적극적으로 은행을 국유화하는 등 강도 높은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며 “은행채 매입 등 유동성 지원을 통해 정부의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번 정부의 은행간 거래에 대한 지급보증도 외국에 비해 늦어 시장에 불안감을 초래했던 점을 감안해 볼 때 더욱 선제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권상희기자 shkwo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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