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여파, 이공계 유학생 `환율 직격탄`

 국내 A대학 전기공학부에 재학 중인 박모씨(27). 그는 최근 MIT 박사과정에 합격 소식을 들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연일 치솟고 있는 환율 때문이다. 고생 끝에 장학금과 생활비 일부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지난해에 비해 500원이나 오른 환율에 추가 비용 지출이 불을 보듯 뻔한 상황. 박씨는 “환율 변동성이 큰 탓에 대책 없이 갔다가는 공부도 제대로 못하고 돌아와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들었다”며 “장학금 지원이 잘 안 될 경우 1년 재수를 할 생각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금융위기로 환율이 급등하면서 해외 유학생의 고통이 배가되고 있는 가운데 학비가 비싸고 장학금 의존도가 높은 이공계 유학생이 환율 직격탄을 맞고 있다. 원·달러 환율은 지난 10일 기준 1306원으로 지난해 10월 말 899원에서 1년 만에 400원 이상 오른 상황이다.

 이 때문에 유학을 준비 중인 국내 이공계 학생들의 걱정이 커지고 있다. 물론 환율 부담이 이공계생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지만 인문계에 비해 평균 2배 이상 비싼 이공계 학비는 관련 전공자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기준, 이공계 전공학비는 평균 2만달러(1년 기준)를 넘는다. 환율이 100원 오를 경우 평균 2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하는 셈이다. 이에 유학을 접고 국내 대학원으로 유턴하는 경우가 생기는 한편 입학 승인을 받고도 장학금을 위해서 1년 재수를 하는 케이스도 나타나고 있다.

 학비만 문제가 아니다. 환율이 오르면서 생활비도 크게 늘었다. 최근에는 미국 금융위기로 미국 내 전체적인 장학금 규모마저 줄어들어 장학금에 의존해 유학계획을 세웠던 국내 이공계 유학생의 상황이 더욱 악화됐다. 미국 스탠퍼드대학교 전기공학부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김모씨(27)는 “아이비리그라 학비도 3만5000달러에 육박하는 데다 근처 생활물가도 비싼 편이라 허리띠를 졸라매는 데도 한계를 느낀다”며 “서울에 있는 대학 친구들이 유학 문의를 해오지만 지금은 말리고 있다”고 털어놨다.

 현지 유학생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미시간대 바이오인포매틱스 석사과정에 재학 중인 정모씨(29)는 “부모님한테 손 내밀기도 죄송해 학교 내 연구실 등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고 있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미국 내 금융위기가 겹치면서 내·외국인 할 것 없이 아르바이트에 나섰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유학생들 사이에서는 지난 97년 IMF때처럼 귀국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이성현기자 arg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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