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버세상은 사회의 `거울`

[新인터넷]릴레이 이슈 대기획-인터넷을 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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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나라 사람 100명 중 77명은 인터넷을 이용한다. 이제 네티즌은 국민이나 마찬가지다. 만남, 취미 등 개인 영역은 물론이고 정치·경제·미디어 등 사회 영역에 이르기까지 인터넷은 우리 삶에 깊숙이 들어와 있다.

 하지만 인터넷을 바라보는 시각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한쪽에선 인터넷 강국으로 추켜세우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거짓 정보와 익명성 뒤에 감춰진 악의가 판치는 곳으로 몰아간다. 후자의 시각에서는 어김없이 규제의 칼날을 들이대기 시작했고 전자는 미래의 먹거리를 걱정하고 있다. 각 주장에 타당한 논리는 있지만 알맹이가 빠졌다. 현재 인터넷 공간의 본질적 속성을 이해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그 어떤 규제도, 비즈니스 모색도, 역기능 해결도 헛돌 수밖에 없다.

 지난 7월부터 이어져온 신인터넷 기획의 마지막 주제는 그래서 인터넷 공간 그 자체다. 이를 위해 지난 4개월 동안 진행한 국내외 취재 결과물과 더불어 △한국·중국·일본·미국의 인터넷 이용자 1517명(한국 617명, 3개국 각 300명씩) 리서치와 각국 네티즌 그룹 인터뷰를 진행하고 △팀 우·로렌스 레식·클레이 서키·존 바텔 등 인터넷 대가와 인터뷰를 추진했다. 또 △정치·사회·경제·법·기술 5개 분야에서 인터넷에 균형 잡힌 시각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과 현재 인터넷 공간과 미래 모습에 대한 심층 토론을 진행했다. 이를 통해 전자신문이 도출한 신인터넷의 본질적인 속성은 ‘거울·공원·목소리(mirror·park·voice)’다.

 ◇인터넷은 오프라인의 투영=유명 연예인의 자살이 몰고 온 파장은 간단치 않다. 인터넷이 부작용의 온상으로 지목되면서 ‘대청소’가 필요하다는 규제의 목소리가 강해졌다. 인터넷에서 부작용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세계(오프라인)는 질서정연하고 깨끗하기만 한데 유독 인터넷만 쓰레기로 넘쳐나는 것일까. 국내외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인터넷 공간을 오프라인과 분리해 극단적으로, 지나치게 특별한 곳으로 볼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권헌영 광운대 교수는 “현재 논란의 문제는 인터넷 공간을 현실세계에서 분리시켜 별도로 정리하고 정화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이라며 “이런 방식은 결코 인터넷의 부작용을 본질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고 말했다.

 온라인 토론장이 분쟁의 장으로 변질되고, 익명성을 빌어 상대방을 비방하는 공간이 됐다는 주장에 대해 송경재 경희대 교수는 “그간 우리나라의 토론 문화에서 자기 의견만을 주장하는 것 외에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고, 합의점을 찾아갔던 적이 한 번이라도 존재했었냐”고 반문한다.

 K리서치가 한·중·일·미 4개국 네티즌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도 거울의 속성이 입증됐다. 우리나라 네티즌 10명 중 8명(82.3%)은 인터넷을 또 하나의 사회라고 생각한 반면에 미국 이용자는 38.7%만이 이렇게 답했으며 단순한 도구라고 인식한 사람이 61.3%로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실용적인 목적으로 인터넷을 이용하고 댓글 문화가 형성되지 않은 미국 사회의 특성을 그대로 반영했다.

 ◇인터넷에 공원(park)이 생기다=당초 인터넷은 개인을 위한 공간이었다. 일반인이 인터넷에 접속하는 이유는 특별(special)했다. 정보 취득, 오락 등 사적인 목적이 인터넷을 지배했다. 하지만 인터넷의 힘이 뻗쳐나가지 않은 곳이 없는 지금, 상황은 많이 달라졌다. 특별했던 공간은 이제 일반·보편적인 장소로 진화했다. 누구나 들어오지만 서로 지켜야 할 룰이 있는 공원(park)의 속성이 생겨난 것이다. 공간의 진화다. 인터넷이 개인 영역뿐만 아니라 같이 즐기고, 누리고, 나눠야 할 공적(public) 영역으로 분화한 것이다.

 공원이 된 인터넷엔 ‘공공 질서’가 엄연히 존재한다. 질서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공적 규제보다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과 사회적 합의를 위한 교육이 더 중요한 이유다. 황성기 한양대 법대 교수는 “공공 질서는 하루 아침에 이뤄지는 것은 아니지만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며 “아직 완전한 틀을 갖췄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인터넷에서도 질서가 생겨나고 있는 과도기적인 상태라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네티즌도 이미 이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4개국 네티즌은 자기 책임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응답자 비율이 90.9%로, 일본 74.7%보다 훨씬 높았다. 인터넷 자정 기능도 우리나라 네티즌의 42.1%가 있다고 답했으며 미국(46.6%), 중국(45.2%)과 비슷한 수치를 나타냈다. 인터넷 댓글의 책임성에서도 작성자가 책임져야 한다는 의견이 4개국 모두 90% 이상이었으며 특히 우리나라 응답률이 96.4%로 가장 높았다.

 ◇보이스(voice)가 생명=이 모든 것을 감안해도 인터넷은 인터넷이다. 인터넷은 본질적 속성은 소리를 내는 공간이다. 그래서 당연히 시끄럽다. 하지만 사회도 원래 시끄럽다. 사회가 발전할수록 더 큰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인터넷의 시끄러움을 잘 수용한다면 역동적인 사회, 성숙한 정치, 에너지가 넘치는 경제를 만들 수도 있다.

 인터넷 사회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준 ‘끌리고 쏠리고 들끓다(Here Comes Everybody)’의 저자인 클레이 서키(뉴욕대) 교수는 전자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사회 변화를 이끄는 인터넷 도구들을 드라마틱하게 끌어안았음을 보여준다”며 “드라마틱한 사회는 드라마틱한 인터넷 공간을 낳았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나 현상이 특별한 문제나 이상이 없으며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인터넷 에반젤리스트인 김국현 한국MS 부장은 “개인에게 정보와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도구가 무한대로 주어졌기 때문에 인터넷 공간에서는 짧은 시간 안에 시장이나 문화, 가치관 측면에서 한꺼번에 매우 다양한 목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다”며 “이렇게 들끓는 인터넷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만 각 부문에서 유용한 이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획취재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