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에 투자한 중소기업이 막대한 손실로 경영난을 겪고 있지만 정부가 이같은 문제에 대해 너무 안일한 인식을 갖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부 기업이 부도가 나는 등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책임이 없다’며 손을 놓고 있어 문제를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통화옵션상품 키코로 인해 사업 근간이 흔들리는 기업들을 위해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부 관계자들은 거래상에서 생긴 손실이어서 개입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지난 19일 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 라디오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개인간에 사적인 거래이기 때문에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하고 얘기할 성질은 아닌 것 같다”며 “은행차원에서 일부 자금을 융통해준다든지 금융지원을 하는 고객과 은행 사이에서 해결할 문제인 것 같다”며 정부가 개입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박 수석은 또 “키코라는 게 단순히 수출입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환율리스크를 상쇄하는 정도의 상품이 아니다”라며 “어떻게 보면 환헤지 상품이라기보다 환투자 상품”이라며 기업에 책임이 있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고환율 정책을 펼쳐 일정 책임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손을 놓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4월 강만수 장관까지 나서 KIKO 상품을 판매한 은행권에 대해 ‘S기꾼’이라며 강도높게 비판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를 보고 있는 중소기업 지원대책에 대해서는 손을 놓고 있는 상황이다. 금융정책기관인 금융위원회도 비슷한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
이처럼 정부가 소극적인 입장을 보이자 피해자인 중소기업은 물론 은행과 정치권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키코 피해를 입게 된 중소기업의 한 관계자는 “만약 대기업이 이같은 피해를 봤다면 정부가 가만 있었겠느냐”며 “대기업을 위한 비즈니스프렌들리 정책일뿐 중소기업을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 명확해졌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송영길 민주당 환헤지피해대책위원장은 “키코 피해기업을 대상으로 4000억원의 추경편성을 시도했으나 이는 정부와 한나라당에 의해 무산됐다”며 “정부가 세계의 환율 흐름에 역주행하는 고환율 정책을 취해 키코 피해가 늘어났으므로 대책 수립에도 성의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은행의 한 관계자도 “은행이 혼자 책임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결국 지난 4월 강만수 장관의 발언도 고환율을 유지하기 위해 은행을 견제하려는 발언이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권상희기자 shkw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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