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 시장 중복규제, 쟁점과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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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발, 한 장단(규제기관)에 춤출 수 있게 해주세요.”

 방송통신위원회와 공정거래위원회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는 어느 통신기업 관계자의 하소연이다. 이 같은 고충은 전기통신사업법 제37조의 3(다른 법률과의 관계)이 실효성이 없는 데서 비롯됐다.

 전기통신사업법 제37의 3에 따르면 이 법이 정한 금지행위로 시정조치나 과징금 처분을 받은 사업자에게 같은 행위를 이유로 공정거래법의 규제를 적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방통위가 금지행위 위반을 ‘먼저’ 처벌한 경우에나 공정위 중복규제를 금지하기 때문에 ‘관할권 중복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또 공정위가 먼저 제재조치를 한 뒤 방통위에 규제권한이 있는지, 방통위가 무혐의로 처리한 건을 공정위가 제재할 수 있는지 등도 쟁점이다.

 두 기관의 규제는 지난 2005년 8월 KT와 하나로텔레콤의 시내전화요금을 둘러싼 부당공동행위(담합)를 놓고 가장 크게 충돌했다. 당시 공정위는 “KT가 기존 시내전화요금을 유지하고, 하나로텔레콤은 요금을 인상·유지하거나 조정하기로 합의해 시장 가격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했다”며 담합행위로 규정했다. KT에 1130억원, 하나로텔레콤에 21억원을 과징금으로 부과했고, 시정명령을 받은 사실을 공표하도록 했다.

 그러나 방통위(당시 정보통신부와 통신위원회)의 시각은 달랐다. 담합이 아니라 ‘요금 행정지도’였다는 것. KT와 하나로텔레콤도 정통부 행정지도를 이유로 들어 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 승소했다.

 두 기관은 지난 2월 SK텔레콤의 하나로텔레콤 인수조건을 둘러싸고 다시 충돌했다. 공정위가 이동통신용 주파수 800㎒를 독점적으로 쓰는 SK텔레콤에 해당 전파를 KTF·LG텔레콤 등 경쟁사와 공동이용(로밍)하라고 주문한 것에 방통위가 반발한 것. 방통위는 “800㎒ 로밍 의무화 문제는 정통부 고유 권한으로 기업 합병인가조건과는 별개”라는 시각이다.

 방통위는 “방송통신 시장 규제는 전문기관(방통위)의 포괄적·우선적 관할이 필요한 분야”라는 주장을 공식화했다. 또 일반 불공정 거래 행위와 겹치는 때에는 관계 당국과 역할을 분담하되 제도적·실질적 협조관계를 유지하거나 법원을 통해 중복규제를 조정하는 해외 사례를 주목하고 있다.

 방통위는 영국 오프컴,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 등 전문 규제기관으로 방송통신 경쟁규제 권한을 모으고, 경쟁법 집행권을 우선적으로 행사하는 사례를 모아 공정위로의 일원화 주장에 대응해나갈 계획이다.

 이와 달리 공정위는 “불공정 거래 행위를 중복 조사하는 것을 막고, 법 적용을 일관화하기 위해 관계 기관 간 협의·조정장치를 공정거래법에 담아야 한다”는 주장이어서 방통위와 이견을 조율하는 데 상당한 진통이 예상된다.

  이은용기자 eyl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