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자존심이 팔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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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자존심’들이 잇따라 팔리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미국 자산 가치가 급속히 하락하면서 자금력이 풍부한 해외 기업들이 미국 기업 지분 인수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수 년전에도 해외기업들이 미국 기업 전체 혹은 지분을 인수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러나, IBM이 레노버에 PC사업 부문을 매각한 경우와 같이 수익성을 상실한 사업 부문을 구조 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최근에는 다르다. 미래 첨단 분야의 기업은 물론 언론과 금융 등 미국 자존심을 대표하는 기업까지 해외 기업들의 지분 매입 목록에 망라돼 있다.

 11일에는 미국 언론을 대표하는 뉴욕타임스가 ‘타깃’이 됐다. 최근 신문 산업 위기와 미국 경기 침체가 맞물려 뉴욕타임스의 광고량은 크게 줄어 들었으며 주가도 올들어 20% 가량 떨어졌다. 이날 블룸버그에 따르면, 멕시코 억만장자 카를로스 슬림이 뉴욕타임스의 지분 6.4%를 매집한 것으로 드러났다.

 슬림은 지난 4일 기준으로 뉴욕타임스 주식 910만주를 보유하고 있다는 자료를 당국에 제출했다. 슬림은 뉴욕타임스를 소유한 오츠-슐츠버거 가문(Ochs-Sulzberger family)을 제외하면, 하르빙거캐피털파트너스, T 로우 프라이스 그룹에 이은 3대 주주로 올라섰다.

 슬림의 지분 인수 배경을 두고는 ‘뉴욕타임스를 완전히 장악하기 위한 것’이라는 의견과 ‘단순한 금융 투자라는 의견’이 엇갈린다. 투자자문회사인 리처드 알랜의 리처드 도프만 상무는 “슬림은 뉴욕타임스를 직접 소유하거나, 적어도 다른 방향으로 움직여 나가기를 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의 미디어 애널리스트 할 보겔은 “슬림의 지분 매집은 금융적인 목적이 크다”면서 “제 3자가 뉴욕타임스를 인수할 때 캐스팅 보드 역할을 하며 (보유한 지분을) 되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뉴욕타임스는 2대 주주인 헤지펀드 하르빙거캐피털과 갈등을 빚었다. 하르빙거는 지분 20% 가까이 확보한 후 이사회 의석 확보와 인터넷 사업 투자 확대를 요구하며 위임장 대결을 펼쳤다.

 뉴욕타임스 뿐만아니라 올들어 미국 기업의 해외 매각 행진이 줄을 이었다. 지난 7월 톰슨로이터의 집계에 따르면, 올들어 미국에서 이뤄진 기업 간 인수합병(M&A) 가운데 해외 기업이 미국 기업을 인수한 경우가 전체의 31%에 됐다. 벨기에 맥주회사 인베브는 미국 최대 맥주업체 안호이저부시를, 스위스 제약회사 로슈는 미국 바이오기술업체 지넨테크를 인수했다.

 아부다비투자청은 미국 자동차 업체인 크라이슬러 빌딩 지분 90%를 사들였다. 금융 분야에선 일본 도쿄해상홀딩스는 미국 중견 보험사 필라델피아콘솔리데이티드를 47억5000만달러에 인수하는 일본 사상 최대 규모 M&A에 합의했다.

 한국산업은행(KDB)도 미국 4위 투자은행인 리먼 브러더스 은행 인수에 깊숙히 참여했다가 최근 협상 결렬을 선언한 바 있다. 현재 미국 생명공학업체 임클론도 매각 작업이 진행중이다. 이 회사는 미국 대형 제약회사를 포함한 다국적 제약회사로부터 주당 60∼70달러의 지분 인수 제안을 받았다. 시장 조사업체인 캐피털 IQ에 따르면 지난 5년 동안 2331개, 총 7723억달러 규모의 미국 기업이 해외에 매각됐다.

류현정기자 dreamsho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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