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생에 앞서 상도의부터

 얼마 전 기자는 짧은 보도자료 한 장을 받았다. ‘에이지이엠코리아’라는 외국계 디스플레이 소재 업체가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에 공급하는 제품가격을 최대 15%까지 인상하겠다는 내용이었다. 기사가 꼭 게재되기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하루에도 수십통씩 쏟아지는 보도자료지만 순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당혹스러웠다. 반년 가까이 국내 디스플레이 부품·소재 업계를 돌아다녀 봐도 삼성·LG를 상대로 단가 인상을 선포하는 업체는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탓이다. 인상은커녕 매분기 행해지는 일방적인 단가 인하를 숨죽이고 감내해야 하는 국내 업체들만 보다 보니 ‘판가 인상’이라는 단어가 낯설 수밖에 없었다.

 삼성전자와 LG디스플레이가 4분기 구매단가를 깎으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은 에이지이엠의 당당한 태도와 묘한 대조를 이룬다. 물론 독보적인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와 그렇지 않은 협력사들의 납품 단가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획기적인 제품력을 가진 기업이 더 많은 이윤을 보장받는 것은 자연스러운 시장 원리기 때문이다. 원가 경쟁력 향상을 위해 모두가 애써야 하는 마당에 협력사라고 해서 고통 분담에서 예외일 수는 없다. 일본·대만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문제는 가격 협상에 임하는 삼성·LG의 자세다.

 일본 패널 업체들은 분기별 가격협상 테이블에서 모든 협력사를 불러 모은 뒤 시황과 경영 전략을 상세히 공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평균 인하폭보다 납품단가를 깎아야 할 때는 충격 완화를 위해 시기를 조율한다. 일정 이상의 이윤을 가져가도록 물량을 늘려주는 것은 물론이다. 삼성과 LG가 숨쉴 때마다 얘기하는 상생협력이 바로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삼성·LG는 구매단가를 10% 안팎으로 대폭 깎으려고 하는 것을 놓고 올해 들어 상생협력 차원에서 인하를 자제했던 누적분까지 포함한 것이라지만 그야말로 구매자의 시각이다. 똑같이 10%를 깎더라도 한 번에 내려치는 것과 두 번에 나눠 낮추는 것에 협력사의 체감 정도는 다르다. 진정 상생협력을 원한다면 서로를 배려할 줄 아는 ‘상도의’부터 배웠으면 한다.

  안석현기자<신성장산업부> ahngij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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