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1조원이 넘는 정보통신진흥기금의 대부분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28일 각종 정보통신 관련법을 통합하겠다는 방침을 발표하면서 슬그머니 이 내용을 끼워 넣었다. 기존 방송기금과 정통기금의 주요 부분을 합쳐 새로운 기금을 만들어 운용하겠다는 것이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꼭 6개월 만이다. 모양새는 우습게 됐다. 이미 지식경제부 소관으로 이관된 것을 두고 뒤늦게 다시 내놓으라고 떼를 쓰는 꼴로 비치기 십상이다. 아마도 정부부처 내에서 만만치 않은 저항과 논란이 있을 것이다. IT산업 정책 총괄권과 함께 정통기금이라는 ‘거저 얻은 떡’을 손에 쥔 지경부가 순순히 응할 리 없다. 예산 당국의 견해도 중요하다. 물밑 대화는 있었겠지만 일사천리로 진행되기에는 사안이 버겁다. 다름아닌 ‘돈’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방통위의 태도를 보면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졸속 부처 개편이다. 기능적 효율성에 매몰돼 정통부를 분리하고 IT정책은 지경부에, 정보통신 규제는 방통위에 각각 넘겼지만 정보통신 진흥기금과 우정사업본부의 관할 문제에는 별로 고민한 흔적이 없다. 정보통신진흥기금은 통신사업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이동전화처럼 정부에서 주파수를 할당받거나 사업권을 교부받아 서비스에 나서는 통신사업자들이 출연한다. 일시 출연금과 해마다 매출액에 비례해 납부하는 일종의 러닝 출연금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난 10여년간 정통부가 정부 내에서 엄청난 파워를 키우고 한국 IT산업 발전에 절대적 영향력을 미쳤던 원천이기도 하다. 해마다 1조원가량의 자금을 IT 연구개발과 벤처 및 중소기업들에 지원했다. 일부 잡음과 ‘눈먼 돈’ 시비가 있었지만 이 자금은 연구기관, 업계를 통틀어 IT산업의 젖줄과 같은 역할을 수행했다. 당장의 상업화가 불가능해 아무도 뛰어들지 못하는 원천 핵심 기술 등에 집중 투입됐다.
이런 ‘파워’를 기계적 사고로 지경부에 넘겼으니 방통위로서는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방통위 역시 IT산업의 육성이란 소명을 갖고 있지만 뚜렷한 실행무기가 없다. 특히 현 제도라면 대가를 주고 돈을 거두는 것은 방통위인데 쓰는 곳은 지경부라는 이중적 구조에 처한다. 방송통신 융합 시대 기술과 기업 지원의 필요성이 널려 있는데도 방통위가 직접 나서기에는 마땅치 않은 구조인 셈이다. 지경부가 알아서 처리해 준다면 별문제지만 방통위 입맛에 맞을 리 없고 결국에는 정작 정부가 눈을 돌려야 할 정보통신 핵심 분야에 지원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방통위가 스타일을 구기면서까지 정통기금의 대부분을 되찾아오겠다고 나선 이유기도 하다.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총괄 부처인 지경부와 방통위는 서로 확실한 논리가 있다. 그런만큼 양측이 합리적 조정을 거쳐 해결하기 바란다. 국민 시각에서 보면 관할이 누구건 우리 IT산업의 성장에 바르게 쓰이기만 하면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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