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견 작곡가 K씨. 음원 신탁단체인 음악저작권협회에 저작권료 징수를 일임했지만 웬일인지 몇 개월째 매출이 제자리다. 알아 보니 K씨의 음원이 유통되던 인터넷 사이트 중 일부가 폐쇄됐다. 불법 저작물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해 저작권법에 철퇴를 맞은 게 이유였다.
# 웹스토리지 업체 사장 L씨. 2009년 1월 새 저작권법이 시행된 이후 죽을 맛이다. 불법 복제물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힘든데 새 저작권법에 따라 불법 복제물을 올린 이용자 계정을 정지하자 회원 수 감소를 몸으로 체감하고 있다.
가상이지만 지난 7월 문화체육관광부가 입법 예고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실행되면 발생할 개연성이 큰 사례다. 개정안은 한마디로 ‘불법 저작물 올린 이용자, 유통시킨 사업자는 인터넷 근처에도 오지 말라’가 핵심 취지다. 언뜻 보기엔 저작권자 권리를 보호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한 방안이다. 하지만 이 같은 원천봉쇄 방안은 ‘콘텐츠 산업 생태계 복원’이라는 당초 취지를 무색케 한다.
◇포털 카페·블로그도 운영하지 말라?=개정안에는 △불법 복제물 게시판 폐지(제133조 2의 제1항) △반복적인 불법 복제물 복제·전송자(이용자)에 대한 계정 정지 및 해지(제133조 2의 제2항) △불법물 유통 온라인서비스제공자(OSP)의 정보통신망 접속 차단(133조 2의 제4항) 등이 포함됐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P2P나 웹스토리지 사업, 포털 카페·블로그 서비스는 아예 운영할 생각도 해서는 안된다. 이용자에 대한 철저한 저작권 교육이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안 적용이 현실화하면 조항들을 피해나갈 방법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천건, 수만건씩 업로드되는 콘텐츠에 대해 불법 복제물인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침해’를 포괄적으로 규정하는 이상 적발 대상이 되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콘텐츠 산업과 인과관계 먼저 살펴야=과도한 규제는 콘텐츠의 핵심 유통채널인 인터넷을 순식간에 위축시킬 수도 있다. 한번 위축된 인터넷 유통채널은 오프라인으로는 복원되지 않는다. 우지숙 서울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공정 이용을 통해 얻는 경제적 이익도 상당히 크다는 통계가 나온다”며 “개정안 대로 간다면 우리나라는 이러한 시장 기회마저도 잃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자 측에서는 ‘필수재’가 아닌 ‘선택재’인 문화콘텐츠에 대한 활발한 향유를 스스로 포기하게 되는 일도 생긴다. 저작물 시장을 키우기 위해 작동해야 할 저작권법이 인터넷 시장 위축과 콘텐츠 수급의 불균형을 가져오는 아이러니를 낳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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