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텔레마케팅(TM) 산업은 스스로의 깐깐함과 엄격함으로 대변된다.
수년 전 일본 TM 시장에서 개인정보 유출 파문을 겪으면서 TM 업계는 ‘최악의 상황’을 맞았다. 업체들은 줄도산의 혼란을 겪어야 했고 여기에 몸담은 근로자들도 구조조정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이에 따라 TM 업계는 자사의 비즈니스에 스스로 채찍질을 가했다. 고객사의 정보를 아웃소싱받아 일하는 회사인만큼 꼼꼼한 보안을 유지했고, 이제는 고객사의 신뢰를 얻는 수준이 됐다. 일본 TM 업체들은 개인정보 보호는 당연하며 고객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기업이 진정으로 TM 영업을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강조한다. 일본 TM 업체들은 우리나라 TM 업체가 겪는 고통을 먼저 경험했다는 측면에서 벤치마크 사례로 꼽힌다.
◇까다로운 정보 의식=일본은 지난 2005년 4월 ‘개인정보보호법안’이 시행됐다. 인터넷이 활성화된 지난 10년간 일본에서는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정보가 유출돼 사회적으로 파문이 일어난 사건이 수차례 있었다. 지난 2004년 모 은행에서 1651명의 정보가, 같은 해 2월 한 초고속통신회사인 고객 데이터베이스 460만명분이 유출되기도 했다. 그 이전에도 일년에 두세 차례씩 유사한 사건이 발생했다.
히시누마 치아키 일본텔레마케팅협회(JTA) 회장은 “당시 일본의 모든 매체가 다루는 큰 사건이었고 그 이후 개인정보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개인정보보호법 등이 등장했다”고 말했다.
TM 업체가 저지른 일은 아니지만 이 같은 사건과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이후 일본 TM 산업은 부정적인 영향을 받았다.
히시누마 회장은 “개인정보보호 이후 전화를 거부하는 소비자도 많아진 것으로 알고 있으며 업체들도 일시적이나마 아웃바운드 영업에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고 전했다.
개인정보 유출 파문 외에 사생활 노출을 꺼리는 일본의 문화도 일본 TM 업계가 갖고 있는 특성이다. 일본의 명함에는 대체로 휴대폰번호를 표기하지 않으며 사적인 용도로 주로 사용한다. 호텔이나 직장 등에서도 정확하게 수신자의 번호를 모르면 통화하기 어려울 정도다. TM 업계에서는 휴대폰보다는 집 전화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고 있다.
일본의 TM 시장은 연 5000억엔 규모로 7.7%씩 성장하고 있다. JTA에 등록하고 영업을 하는 업체는 대략 200개 회사다. 100∼300석의 소규모 회사가 많으며, 회사 비용의 70%가량이 인건비고 콜센터 근무 직원의 90%가 계약직이다.
지난해 일본의 텔레마케팅 시장 규모는 대체로 5000억엔(4조7212억원)으로 추산된다. 내년도에는 6000억엔가량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히시누마 JTA 회장은 “(TM을 포함한) 일본의 통신 판매 산업은 지난 1999년 이후 정보기술(IT) 시장 확대, 인터넷 기술의 발달 등으로 연평균 7.7%가량 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신뢰성 개척으로 극복=일본 TM 산업이 엄격한 문화,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등의 악조건 속에서도 시장을 넓혀 갈 수 있었던 것은 고객의 신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히시누마 JTA 회장은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이전부터 협회를 중심으로 법 규정보다 엄격한 자체 보호 기준을 마련하고 시행함으로써,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지 않았다”고 말했다. 협회 소속 TM 업체들은 개인정보보호법과 내부 규정에 따라 고객의 동의를 받은 내용에 한해서 영업을 하는 한편, 정보 유출을 막기 위해 텔레마케터에 대해 엄격하게 관리한다.
일본 최대 텔레마케팅업체인 트랜스코스모스의 콜센터는 반도체 회사만큼이나 엄격한 통제 시스템을 갖췄다. 전산 안전장치는 물론이고 콜센터 내에서 개인의 소지품 유입도 엄격하게 관리한다. 도미자와 유키코 트랜스코스모스 홍보담당은 “텔레마케터의 대부분이 여성인 점을 감안해 꼭 필요한 물품을 담을 수 있는 비닐 핸드백을 출입 시에 제공한다”고 전했다.
TM 업체들 간의 ‘엄격성 경쟁’은 업계 전체의 신뢰도를 높였다. 다카토미 트랜스코스모스 본부장은 “고객 기업들이 개인정보가 유출된 이후의 사태를 더 잘 알고 있다”며 “생존을 위해서라도 TM업체들은 보안과 관련된 ISO인증, 프라이버시마크 등 다양한 자격을 확보했다”고 설명했다.
◇신시장 개척으로 외연 넓혀=일본의 TM 업체들은 단순 전화 영업에 그치지 않는다. 트랜스코스모스 등 TM 업계 상위권 업체들은 우편, 전화 등 전통적인 수단과 함께 인터넷, e메일 등을 사용한 접근 방법을 이미 4∼5년 전 도입했다. 고객사의 신뢰를 전적으로 확보한 뒤, 고객사의 데이터베이스(DB)를 컨설팅, 체계화, 관리 등의 과정을 대행해주는 종합 마케팅 회사로 변신했다. 다카토미 본부장은 “풀 아웃소싱 개념을 처음 도입해 고객관계관리(CRM)를 정확하게 함으로써 시장을 개척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TM 업체 스스로 엄격한 관리와 신시장 개척 등으로 인해 일본 내에서 시장의 선택을 받았다. 결국, 선진화한 업체들은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IT를 기반으로 한 종합 마케팅 회사가 됐고, 그렇지 못한 회사들은 도태되면서 안정화단계에 접어든 것이다.
◆히시누마 치아키 JTA 회장
“텔레마케팅(TM) 기업들이 정보 관리의 철저함을 보이면 소비자와 고객은 안심하고 자신의 정보를 맡길 것입니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훌륭하게 영업을 할 수 있습니다.”
도쿄기술대학 교수이자 일본 텔레마케팅협회(JTA) 회장인 히시누마 지아키 박사는 한국의 TM 산업이 처한 상황을 들어서 알고 있다면서 결국 고객의 신뢰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본은 TM 업계가 겪은 일은 아니지만 전 사회적으로 관심사가 된 이후에 한층 성숙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난 2005년 일본의 개인정보보호법 시행 이전부터 더욱 엄격하게 규칙을 만들어 회원 기업 정보 관리를 관리했고 위반한 기업은 회원자격을 박탈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제까지 위반한 회원이 없습니다.”
JTA에서 회원사에 강요하지 않아도 회원 스스로 잘 참여를 했고 이제는 자발적으로 규제를 잘 지키는 JTA회원사에 대한 고객사의 신뢰가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히시누마 회장은 한국의 최근 상황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유익한 자산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텔레마케팅은 기업뿐만 아니라 관공서, 지방자치단체 등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산업의 건강성을 확보하면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기업 모두가 고객 가치 향상, 충성도 높은 고객 창출 등을 위해서 TM이 중요하다는 것을 다 알고 있다”며 “고객을 안심시킬 수 있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찾아나가면 해결 방안이 나올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같은 일에 관련 협회가 고객회사와 소비자의 의견을 미리 듣고 이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나서면 한국의 TM 업체들에게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성공사례/트랜스코스모스
창업 23주년을 맞은 일본 최대의 텔레마케팅 업체인 트랜스코스모스는 지난 2006년 1415억엔(TM 외 매출 포함, 연결매출 기준)의 매출을 올렸다. 지난해 3월 기준으로 자본금 규모만 해도 291억엔에 이르며, 직원도 1만명에 이른다.
이 같은 매출액과 종업원 수가 전부 일본에서 집계된 것은 아니다. TM 매출 외에도 컨설팅, 솔루션 매출 및 해외 매출과 해당 인력이 포함된 수치다. 이 회사는 ‘IT 커뮤니케이션에 다리를 놓자’는 홍보 문구를 내세우며 TM 영업부터 컨설팅, 마케팅 전략, 웹사이트 구축 및 운영, IT 솔루션 개발까지 커뮤니케이션 전 분야를 다룬다.
다카토미 신야 트랜스코스모스 본부장은 “처음부터 고객들이 완전한 외주(풀 아웃소싱)를 할 수 있도록 체계를 갖췄다”며 “새로운 TM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었다”고 강조했다.
또 TM 산업이 자국 언어권에 머무를 것이라는 편견을 깨고 해외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 회사는 한국, 중국(톈진, 다롄, 베이징, 칭다오, 상하이, 광저우), 홍콩, 싱가포르, 태국, 미국(뉴욕,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필리핀 등에 지사 및 자회사를 두고 있다. 그러나 트랜스코스모스 해외 사업은 일본 기업에 국한되지 않는다. 해외 각지의 TM 회사를 인수, 선진화함으로써 현지 업체는 물론이고 미국과 EU 등의 기업도 고객을 확보했다.
다카토미 본부장은 “글로벌 사업을 전개하면서 토대를 만들기 위해 주력한 것은 현지의 유력 회사들과 제휴를 맺거나 자본 제휴를 통해 그 회사와 함께 사업을 확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전력으로 해외 매출의 절반 이상을 비일본계 업체에서 올리고 있다고 회사 측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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