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단상]한국 벤처의 성공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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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년 전 미국 투자기관인 오펜하이머사의 마크 모닌 부사장이 한국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는 코트라가 주최한 벤처기업인 세미나에서 “한국의 벤처기업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아주 뼈아픈 발언을 한 바 있다.

 그는 그 이유로 두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로 한국의 벤처기업은 기술개발 의지와 특허등록은 뛰어나지만 마케팅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 업체는 한 가지 기술로 열 가지 제품을 만들어 팔 생각을 하는 반면에 한국 업체는 열 가지 기술로 한 가지 제품도 제대로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그는 “특허 등록과 기술개발도 중요하지만 한 가지 제품이라도 시장에서 성공시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둘째로 모닌 부사장은 국내 벤처기업 조직에 문제가 있다고 진단했다. 단적인 예로 국내의 대다수 벤처기업이 엔지니어 위주로 구성돼 있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그리고 그나마 마케팅과 세일즈 부서가 있더라도 매우 미미하거나 가분수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많은 해외 투자가들이 “머리만 크고 손발이 작기 때문에 제품이 시장에서 성공할 확률이 낮은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고 의아한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한 지적이 국내에서도 나온 적이 있다. 허범도 전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현 한나라당 의원)은 “중소 벤처기업을 창업하려는 많은 사람들이 기술력만 믿고 덤벼들지만 대부분 생산과 마케팅 고지를 넘지 못해 좌절한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생산과 마케팅 고지를 넘을 자신이 없다면 창업도전은 거의 백전백패”라고 경고한 바 있다. 그의 ‘TPM 이론’에 따르면 벤처기업이 성공하려면 기술(technology)·생산(production)·마케팅(marketing)이라는 3개의 고지를 넘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국내 기업은 기술고지를 넘는 기업은 약 90%지만 생산 고지까지는 40∼50%, 끝으로 마케팅 고지까지는 전체의 5∼10%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그 이유는 벤처기업이 기술고지를 넘긴다 하더라도 생산고지 정복까지 공장입지와 기계, 장비, 원자재 확보 등도 문제지만 당장 인력 확보가 가장 어려운 과제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비록 생산 고지까지 어렵게 올라간다 하더라도 가장 험난한 고지인 마케팅 고지에서 무너진다고 지적했다. 특히 마케팅 고지에서 과도한 마케팅 비용을 제외하더라도 기존 거래의 보수성, 인지도 부족, 신뢰도 미흡이라는 3가지 난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할 난관에서 국내 벤처기업들이 좌절할 수밖에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에는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이사회 의장이 ‘한국 벤처기업의 장래’를 묻는 질문에 “창업정신이 실종되고 벤처 스타가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며 “이는 나라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뜻”이라고 불만을 내비친 적이 있다.

 이들 세 사람의 지적과 충고는 시각에 따라 약간의 차이를 보이고는 있지만 대체로 비슷한 의견을 갖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우리는 벤처기업의 실패는 무엇보다 기업인 자신의 문제가 더 큰 이유다. 일단 기업화에 성공한 이후에는 경영자로서 자질과 능력의 문제가 더욱 중요하다. 벤처기업인이 자신이 개발한 기술에 안주하거나 자만해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더구나 기업 위상은 변화됐는데도 기업인의 경영 태도가 그대로라면 더욱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벤처기업 CEO 자신이 알고 있는 학습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비즈니스에 대한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지 못한다면 좌절과 실패는 계속될 것이다. 기업의 최고경영자는 기업의 단순한 대표가 아니다. 고객이, 국민이 요구하는 책임과 의무를 짊어진 우리 사회의 지도자다. 안석우 안피알 대표 aswp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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