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신문 탐사보도팀은 오랜 수소문 끝에 릴그룹과 웹하드·P2P 등 파일 공유 서비스 쪽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이상헌씨를 만날 수 있었다. 이씨는 파일 공유 서비스 업계에 정통한 인물로 그에게서 불법 복제물이 매매되는 실태를 들었다. 본지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가명을 사용했으며 신원을 추측할 수 있는 내용은 편집했음을 밝힌다. 다음은 일문일답.
―릴그룹이 궁금하다. 구성원들은 어떤 사람인가.
▲릴그룹이라고 해서 집단의 개념만은 아니다. 혼자서 복제하는 사람도 있고 수십명 있는 그룹도 있다. 신상은 서로 묻지 않아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취미 삼아 하는 어른도 있고 전문적으로 이 일만 하는 사람도 있다.
―국내에는 릴그룹이 몇 개나 있나.
▲이름만 얘기하면 알 수 있는 곳이 8개 정도고 나머지는 신생 그룹이 30∼40개다.
―릴그룹은 복제물을 어떻게 만들어 내는 것인가.
▲국내 자료는 DVD나 CD에서 소스를 추출해 디지털 파일로 압축한다. 복사를 한 DVD는 다시 중고로 판매한다. TV 프로그램 같은 것은 TV 수신카드로 직접 녹화한다. 해외 자료는 다른 릴그룹에서 받는다. 서로 자료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전 세계 릴그룹의 규모는 엄청나기 때문에 자료의 양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약 조직과 같은 네트워크가 형성돼 있다고 하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국내에서 주로 유통되는 파일은 어떤 것인가.
▲워낙 다양해서…. 이렇게 얘기할 수 있다. 가장 돈을 잘 벌어다 주는 자료는 음란물이다. 다운로드 횟수가 가장 많다. 요즘 영화 업계에서 웹하드·P2P 때문에 DVD 시장이 다 죽었다고 하는데 영화는 10∼20%밖에 안 된다. 성인물이 70%, 영화와 음악 각각 10%, 나머지는 소프트웨어 기타 등등이다.
―릴그룹이 P2P나 웹하드 업체들과 계약하고 활동한다고 들었다.
▲악어와 악어새 관계라고 해야 하나. 사이트(파일 공유 업체들) 쪽에서는 자료가 빨리 올라오고 그 양도 많을수록 회원을 확보하고 유치하는 데 좋다. 그런데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되겠나. 돈을 들여서라도 사람을 써서 자료 올리게 하고 그래야 할 것이다. 그건 이 바닥에서 아주 통상적인 일이다.
―흔한 일이란 뜻인가.
▲통상적이고 아주 일반적이다. 웹하드·P2P가 생긴 지 언제인데. 그런 건 이제 구닥다리 방식이다.
―계약하고 일을 해주는 것은 예전에나 그랬다는 얘긴가.
▲지금도 그렇게 하는 곳이 있겠지만 최근 경향은 직접 경영에 참여하는 것이다. 같이 일해줄 테니 지분을 달라고 한다. 아니면 창업을 하거나. 이건 릴그룹에만 국한된 얘기도 아니다. 대형 클럽들도 이렇게 움직인다.
―클럽(커뮤니티의 일종)도 그런가.
▲클럽에는 이미 많은 회원이 모여 있고 자료의 양도 많아 업체가 이들을 영입하려 한다. 그런데 대형 클럽은 수가 적고 이를 탐내는 업체는 많으니까 클럽이 ‘갑’이 되는 것이다.
―릴그룹이나 대형 클럽이 직접 회사를 운영하려면 자금이 만만치 않을 텐데.
▲전주들이 있다. 이쪽 사업이 경쟁이 심하지만 남의 물건(저작물)으로 장사하는 곳인데 개발비가 들어가냐, 투자비가 필요하냐. 통신료, 전기료나 내고 그러면 되지. 그만큼 사업하기 괜찮고 수익률이 좋아 투자하겠다는 사람들이 있다.
―릴그룹과 대형 클럽이 사이트와 계약하고 하는 일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계약에 따라 다르지만 릴그룹을 예를 들면 이쪽 용어로 ‘초기세팅’이란 게 있다. 사이트가 오픈하기 전 각종 자료를 업체 쪽 서버에 올려 놓는 거다. 프랜차이즈 점포를 오픈할 때 본사에서 다 준비해주는 것처럼 릴그룹이 자료 준비해주고 시스템 잘 작동하는지 확인도 해주고. 클럽은 회원들이 업로드와 다운로드 많이 하게끔 잘 관리하는 거다. 회원이 이탈하지 않도록 자료도 빨리 구하고 경품 이벤트도 하고 기타 등등의 일을 하면 된다.
―그렇게 해서 받는 대가는 얼마인가.
▲세팅비용만 놓고 보면 1000만원부터 최대 5억원까지다. 계약하기 나름인데 복제에 필요한 장비·서버 등 일체를 지원해 준다면 단가는 낮아지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가격이 오르고 그런다. 클럽은 회원 매출의 20∼30%를 운영자가 갖는다. 또 회원 이탈 방지를 위한 클럽 지원비도 있는데 200만원부터 1억원까지 때에 따라 달리 지급된다.
―금전 거래는 추적의 위험이 있을 텐데.
▲그걸 누가 모르겠나. 다 깨끗해진 돈으로 한다. 결제 방식은 크게 현금과 포인트로 하는데 현금은 잘 아는 사람들끼리 할 때 하고 포인트는 친분이 없는 사람을 고용해 결제할 때 쓰는 방식이다. 어차피 이런 작업은 서로 얼굴을 알아서 좋을 게 없기 때문에 포인트도 많이 이용된다.
―현금은 추적이 어렵다 해도 포인트는 쉬울 텐데. 누가 어떤 자료를 올려서 얼마만큼의 포인트가 누적됐는지 데이터베이스(DB)에 다 남을 것 아닌가.
▲기록을 남길 것 같나. 작업이 끝나면 관련 DB를 지운다. 포인트만 남을 뿐이다. 경찰이나 검찰에서 포인트가 왜 많은지 의심해도 확인할 길이 없다. 내가 무슨 자료를 올렸는지 기록이 아예 없기 때문이다. 포인트가 많이 쌓인 게 의심스럽지만 이것 갖고는 추적이 불가능하다. 포인트는 안전하게 현금으로 환전하면 된다. 만의 하나 사이트에 내 개인정보가 남아 있을 것을 우려해 IP는 해외 IP를 쓰고 주민번호도 남의 것을 이용한다. 깨끗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릴그룹 활동에도 적지 않은 운영비가 든다고 들었다.
▲지상파만 해도 동시간대의 저녁 프로그램을 녹화하려면 PC가 최소 석 대 이상은 있어야 한다. 그냥 PC도 아니고 성능이 좋고 처리 속도가 빠른 PC여야 한다. 게다가 한 프로그램만 녹화하는 것도 아니고 거의 24시간을 계속 가동해야 하는데 이렇게 쓰면 PC 금방 교체해줘야 한다. 그런 비용, PC 사용하는 데 따른 전기세, 릴그룹 멤버에게 줘야 하는 수고비 등을 따지면 연간 3000만∼4000만원은 필요하다.
―상당히 큰 금액인데.
▲처음에는 취미로 시작한 사람들이다. 나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라 각자 자비를 들여 활동했다. 그러다 웹하드와 P2P 같은 상업 사이트가 생기면서 릴그룹과 클럽들도 변질됐다. 처음엔 소수의 사람들끼리만 자발적으로 자료를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시작된 건데, 이게 돈이 된다는 걸 아니까 업체와 결탁하게 되고 돈을 벌게 되니 욕심이 커지면서 불법 복제물로 사업체까지 꾸리는 지경에 이르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를 만나고 자세한 얘기도 들려주는 건가.
▲불법을 조장하고 이를 이용해 돈을 버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는데 저작권 단체들과 법무법인, 사법 기관 등은 서비스를 이용한 개인 회원들에게만 책임을 묻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이런 상황이 매우 안타까웠다. 불법 복제가 사라질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 릴그룹과 같은 사람들은 예전부터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불법이 음지에서 소수로 있는 것과 양지로 나와 다수에게 전파되는 것은 문제가 다르다. 게다가 합법이란 이름으로 가장해 많은 사람을 함정에 빠뜨리는데도 불구하고 뿌리를 찾아내 뽑지 못하는 것은 분명한 문제다. 내 신상에도 좋지 못한 발언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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