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휠체어 대국’으로 유명한 프로 바둑기사 조치훈이 대한해협을 건너가, 1980년 당시 바둑 최강이던 일본의 명인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국내 바둑 붐은 최고조에 달했다.
동네 바둑학원에는 흑백 색깔이나 겨우 가릴 법한 어린 꼬마들의 종종걸음이 이어졌고, 각종 바둑대회들이 성행했으며, 기원은 청운의 꿈을 안은 프로 지망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때부터 양적, 질적으로 열악했던 한국 바둑계에 세계 제일의 고수 국가가 되기 위한 건실한 토양이 다져졌고, 약 10년 후 우리나라는 일본과 중국을 제치고 세계 바둑 최강국으로 올라서게 됐다.
IT 강국이라고 자부하던 우리나라의 기초가 흔들리고 있다. 디지털기회지수(DOI) 1위, 전자정부 참여지수 2위 등 세계 최고의 IT 강국 이미지를 구축했으며, 미국과의 정보통신 분야 격차는 1.3년에 불과할 정도로 건실한 하드웨어를 갖추고 있으나, 해킹·개인정보 침해나 불법 스팸 등으로 정보보호의 수준은 낮은 평가를 받고 있다.
특정 단체나 기관을 사칭한 신종 보이스 피싱, 모 기업의 개인정보 대량 유출, 새로운 유형의 해킹 기법 출현 등 뉴스를 듣다 보면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이런 말들은 이제 IT의 문외한일지라도 어느 정도 의미를 짐작하게 한다.
우리는 분명 그간 정보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역기능에는 소홀했다. 선진국가의 정보화 대비 정보보호 예산 비중이 8∼10%인 것에 비해 우리나라는 불과 2∼4%인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새 정부 출범과 함께 디지털 컨버전스 시대에 걸맞도록 정보보호 업무가 비중 있게 다루어지고 있어 천만다행이다. 정부는 현재 개인정보 보호 종합대책 수립과 침해사고 대응체계 수립 등과 함께 국민에게 정보보호의 중요함을 인식시키고, 생활 속에서 이를 실천할 수 있도록 다양한 캠페인도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정부의 노력과 함께 또 하나 야심차게 준비해야 할 것이 바로, 정보보호 인재를 발굴해 체계적으로 양성하는 것이다.
조치훈이라는 걸출한 인재의 탄생이 우리나라 바둑을 세계 최강으로 발돋움하게 한 원동력이 됐고, 박세리·박지은 등 세계를 강타한 한국 여성들 덕에 특정 계층만이 향유하던 골프라는 종목이 자연스레 일반인에게 스며들었다.
국민 남매로 부상한 박태환과 김연아 선수는 불모지나 다름없던 대한민국의 수영계와 피겨 스케이팅계를 단숨에 활력이 넘치는 용광로 같이 달궈 놓았고, 최근 우리나라 최초 우주인 이소연은 새로운 우주과학 시대를 열고, 우주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꿈을 갖게 했다.
정보보호 분야에서도 제2의 안철수, 이를 능가하는 인재를 만들어내는 일이 다른 노력과 더불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실력 있는 정보보호 전문가들을 체계적으로 양성해 산업체에 공급함으로써, 이들이 기업 활동 전반에 걸친 보안 위협에 체계적으로 대응하고, 종합적인 정보보호 대책을 수립하는 최고정보보호책임자(CSO)로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SO는 더 이상 기업만을 위한 정보보호 인력이 아니라 국가 정보보호 수준을 제고할 필수 인력이기 때문이다.
로빈 윌리엄스와 맷 데이먼이 출연한 영화 ‘굿 윌 헌팅’을 보면, 수학에 뛰어난 천재성을 가진 학교 청소부를 학자의 길로 인도하기 위해, 인생과 삶의 지혜를 가르쳐 세상과 사회에 효용성이 있는 사람으로 만들어내는 과정이 나온다.
정보보호 인재를 키우는 과정도 마찬가지다. 사회 주체가 합심해 훌륭한 재능을 갖춘 인력을 발굴하고, 특히 국가 안보 마인드와 정보보호 사회 구현에 기여할 수 있는 인성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많은 사람이 서로 다른 유토피아를 꿈꾸며 살아가지만, 정보보호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안전하고 따뜻한 디지털 세상이 바로 유토피아다. 뉴스에서 인터넷과 관련한 사건, 사고 소식이 사라지고, 따뜻한 정이 넘치는 IT 뉴스로 가득찬 유토피아를 만들어줄 ‘정보보호 인재’들을 기다려본다.
황중연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 jyhwang@ki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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