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에너지 대책이 한 건 주의와 행정 만능주의라는 구태를 답습하고 있어 답답함을 넘어 안쓰럽기까지 하다. 정부가 24일 발표한 ‘에너지 절약대책’은 우리 경제의 발목을 잡고 있는 고유가 시대를 헤쳐 나가기 위한 고육책에서 나온 것으로 평가할 수 있지만 그 세부 내용을 들여다보면 과연 실천력을 담보한 것인지 의아스럽다. 게다가 일부 내용은 정부가 유가 인상 때마다 빼어든 재탕, 삼탕 정책이란 지적까지 받고 있다. 정부 대책 가운데 가장 논란을 부르고 있는 부분은 냉난방 기준 설정과 과태료 규제다. 정부는 여름철 냉방 하한을 26도, 겨울철 난방 상한을 20도로 제한하고 이를 지키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하기로 했다. 특히 이 같은 규정은 오는 2011년까지 가정을 비롯한 모든 단위 건물로 단계별 확대 적용하겠다고 밝혔다.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100%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 현실에서 에너지 과소비는 망국병에 해당한다.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환경 재앙의 단초가 된다. 당연히 절약하고 규제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해야 할 일의 한계는 분명히 있다. 각 가정의 아파트에까지 무차별적으로 온도를 통제하고, 위반하면 과태료를 물리겠다는 것은 실행 불가능한 대표적 행정 만능주의 발상이다. 정부 건물이나 다중 집합시설은 정부의 규제 범위라고 인정할 수 있지만 환자나 노약자를 돌보거나, 혹은 특별한 실내 온도가 필요한 각 가정을 획일적 규제 틀 속에 가둘 수는 없다. 정부도 병원이나 양로원 등 특수 시설은 제외한다고 했다. 정부가 가정의 실내 온도까지 통제한다는 것은 시대 착오적이다. 마치 과거 70년대 유신시절 혼식 도시락 검사를 연상시킨다. 그 무시무시하던 5공 정부의 과외금지 조치도 채 2년을 버티지 못했다. 실용주의 정부라면 행정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없는 분야쯤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번 대책의 입법화 과정에서 가정 부분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
모든 가전제품의 대기전력 1와트 제한 및 스마트계량시스템 보급 대책 역시 새로울 것이 없는 생색내기용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엄격한 에너지 기준을 충족시키고 있는 국내 업체는 이미 대기전력 1와트 이내의 제품을 생산, 시판하고 있다. 이 정도의 기준을 못 맞춘다면 시장에서 외면받는다. 스마트 계량시스템 역시 신축 아파트는 이미 수년 전부터 이를 도입, 운용해 왔다는 것이 업계의 반론이다.
이명박 정부가 에너지와 자원이 곧 국가 경쟁력으로 전이되는 현실을 가장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국정 역량을 쏟아붓고 있는 점은 박수받을 만한 일이다. (또 신속하게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정부의 모습도 든든하다.) 그렇지만 과욕에서 빚어진 일부 대책은 시정되는 것이 마땅하다. 21세기 사회에 20세기 대책은 어울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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